나의 소박한 꿈은 부모님 고향인
황해도 배천서 어머니와 거니는 것
제재상황이라도 지금 '왕래' 원해
개성공단이든 금강산 관광이든
우선 허용하면서 남북문제 풀어야


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디자이너
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십(10)이라는 숫자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만든다. 십이라는 수는 완성, 충만의 숫자로 인식되어왔다. 손가락으로 개수를 셀 때 열 개가 되면 꽉 차고 만족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도 십이 가진 '이상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힘은 우리의 심리적 힘이다. 그래서 동서양 모두 십계명, 십장생 등 십이라는 숫자를 빌려 사람들의 심리에 영향력을 미쳐왔다고 볼 수 있다. 십은 완성이기 때문에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큰 계획을 세울 때 10년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2020년 올해는 십 단위의 해인데 희망과 시작의 힘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불완전 수라는 의미가 있는 9의 기운이 아직도 우리의 심리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한 해는 정말 혼란의 시대였지만, 한시대의 마감이었다고 역사가들은 평가할 것이다. 난장판 국회였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새로운 선거법이 만들어졌다. 조국 법무부장관 사태는 우리 사회의 이면을 다 드러내 보이며 치열한 갈등을 유발시켰지만, 사람들의 윤리적 기준을 높였고, 결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이 통과되어 검찰의 기소독점권이 폐지되었다. 4월에 새로운 선거법하에서 새로운 국회가 구성되고, 7월에 공수처가 설치되면, 작년 한 해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고통의 시기였다는 희망을 갖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 희망은 다양성, 견제와 균형이 우리 사회에 더 공고히 정착되어 공정성과 공평함을 더 느끼며 살 수 있는 사회에 대한 희망이다.

국내 정치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일정표가 제시되었는데, 아직도 희망의 일정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남북관계이다. 앞을 알 수 없는 남북관계가 2020년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를 여전히 불안하게 한다. 2018년 남북의 화해 분위기가 2019년 북미회담까지 이어지게 하였지만, 지금은 서로에 대한 호감을 거둬들이고, 섭섭했던 마음들을 드러내놓고 있다. 아직까지 다시 잘해보자는 속내는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섭섭함이 쌓이면 증오로 변한다는 인생사를 남북과 북미 간에 보게 될까 걱정된다. 잠시의 기대와 희망이 더 큰 절망과 낙담으로 이어질까 두렵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 간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미국-한국과 중국-북한의 대립구도로 바뀔까,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 한국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끌려갈까 걱정된다.

그래도 나는 2020년을 맞이하며, 10년 후의 꿈을 그려본다. 10년 후에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아서 결국 새로운 남북관계가 열렸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십 년 동안 꿈을 간직할 생각이다. 내 꿈은 어머니가 90세가 되시기 전인 5년 내 어머니와 같이 황해도 배천을 방문하는 거다. 10년 후에도 어머님이 건강하게 내 손을 잡고 배천을 돌아보는 것도 기대한다. 황해도 배천은 부모님 두 분이 태어나시고 자라신 고향이다. 부모님들은 배천 자랑을 많이 하셨다. 연백평야 지역이라서 농사가 잘되고, 황해를 접하고 있어서 수산물도 많고, 배천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깨끗한 물이 많고 온천까지 있어서 살기 좋은 동네였다고 한다. 38선 이남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휴전선 이북이 되어서 더 애틋함이 크신 것 같다. 서울이라는 곳이 전형적인 고향이라 지리적 풍광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배천이 고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소박한 꿈이 모두의 꿈이 될 때 꿈은 희망이 되고, 의지가 되고, 계획이 되고, 실천이 될 것이다. 꽉 막힌 듯한 남북, 북미 관계를 보면서 꿈이 현실이 되도록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일을 하면서 항상 염두에 두는 개념이 있다. "생각은 크게, 시작은 작게, 그러나 빠르게 움직여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라는 큰 목표를 위하여 작은 시작이 절실한 시기가 되었다.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란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위한 것이다. 결국 제한적이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왕래이다. 평화통일 후의 자유로운 왕래가 아니라 분단, 제재 상황이라도 왕래는 할 수 있기를 지금 원한다. 개성공단이든 금강산 관광이든, 먼저 왕래를 허용하면서 남북문제가 풀어져 나가야 할 것이다.

/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