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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인생의 노래'라는 게 있다. 이른바 '18번'. 내겐 송창식 첫 번째 앨범에 수록된 '밤눈'이 그런 경우다. 송창식 작곡 최인호 작사. '한밤중에 눈이 나리네 /소리도 없이 /가만히 눈감고 기울이면/까마득히 먼 데서 /눈 맞는 소리/흰 벌판 언덕에 눈 쌓이는 소리'. 아주 아주 오래전 눈 내리던 날 밤, 이 노래를 들으며 하염없이 걷다가 지지대 고개를 넘어 군포사거리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 결국, 폭설로 바뀌면서 모든 교통편이 끊겨 그 먼 눈길을 다시 걸어 돌아와야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좋았다.

지금은 찾기 힘들지만, 예전 동네 골목 입구엔 전파상과 음반가게가 흔하게 있었다. 눈이라도 내려달라고 애원하듯, 겨울이 오면 이곳의 낡은 스피커를 통해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살바토레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Tombe La Neige)다. 이 노래 덕분에 아다모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샹송 가수가 됐고, 세 번이나 한국을 찾았다. 우리나라 남녀가수들이 앞다퉈 번안해 불렀는데 특히 김추자의 노래가 일품이었다. '눈이 나리네/당신이 가버린 지금/눈이 나리네/외로워지는 내 마음/눈에 그리던 따듯한 미소가/흰 눈 속에 가려져 보이질 않네'.

지난달 적설량이 역대 12월 중 최저였다고 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주요 관측지점의 최심신적설 합계는 0.3㎝로 나타났다. 이는 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래로 가장 적은 12월 적설량이다. 최심신적설은 24시간 동안 새로 내려 쌓인 눈 중 가장 많이 쌓인 곳의 깊이를 뜻한다. 그동안 최저 기록은 1998년의 0.6㎝였다. 특히 인천을 포함해 전국 10곳의 적설량은 '0'이었다. 올겨울 들어 단 한 번도 눈이 내리지 않은 것이다.

눈이 내리지 않는 대신 12월 강우량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 같은 원인은 두말할 것 없이 전 세계에 불어닥친 이상 기후 탓이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비가 차지하고 있으니 눈과 관련된 노래가 나올 리 만무하다. 이런 날씨라면 천하의 송창식이라도 '밤눈'같은 곡을 다시는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송창식의 '밤눈'과 살바토레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가 흘러나와야 제맛이다. 이제 두 달여 남은 겨울, 우리는 눈다운 눈을 볼 수 있을까. 적설량 '0'으로 겨울의 추억 하나를 잃은 것 같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