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의 독서율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한국 성인 10명 가운데 4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치고 너무 낮은 독서율에 외국인들은 의아해 한다. 그런 나라에서 이맘때가 되면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책을 사고파느라 북새통을 벌이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4·15총선을 앞두고 전국을 들썩이게 하는 정치인 출판기념회 때문이다. 선거법상 총선 D-90일이 되는 16일부터는 국회의원과 예비후보들의 출판기념회가 금지되기 때문이다. 오늘이 그 마지노선이다.
국회의원은 연간 1억5천만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까지 후원금 모집이 가능하다. 그러나 출판기념회의 수익은 후원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횟수와 한도제한도 없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할 의무도 없다. 그러다 보니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 모금 행사로 변질한 지 오래다. 출마자에게 '눈도장'을 찍거나 이른바 '보험'을 들어야 하는 이들에겐 출판기념회 초대장은 '청구서'나 다름없다. 유명 정치인의 경우 적게는 1억~2억원, 많게는 10억원이 넘게 책이 팔린다고 한다. 일반 서점과 다른 것은 정가 1만5천원의 책이 10만원에, 때로는 100만원에 팔린다는 점이다.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처음부터 책 읽기가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책이 엉성하다. 물론 정성이 가득 담겨 있는 책도 있지만, 대부분은 함량 미달이다. 선거를 앞둔 출판기념회의 경우는 급조해서인지 특히 그렇다. 자화자찬 수필이 주류여서 읽는 것도 고역인 경우가 많다. 찾는 이들 역시 '얼굴도장 찍기'가 목적이라 책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방명록에 서명한 후 봉투를 전달하고 책을 한 권 받아들지만,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허망한 출판기념회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치인의 책은 보좌관이 써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대필 작가가 맡는다. 좀 알려진 작가는 한 건당 2천만원, 무명작가는 500만원 정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용도 투철한 국가관을 바탕으로 고난을 이겨낸 인간승리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 희망과 비전을 첨가하면 '뚝딱' 한 권의 책이 완성된다. 원래 출판기념회는 집필의 산고와 출간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소박한 뜻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숭고한 뜻이 온데간데없다. 책 한 권 만드는데 3m짜리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진다는 걸 정치인들은 알고 있을까.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