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당파성과 협소함에 빠져있어
사회의 맹목성 추인하는 현장 헤매
독점·당파적 이익은 파멸로 이끌어
역사를 성찰하고 인간다움 모색해야
16세기 이래 변화된 시대상에서 그들만의 역사적 경험에서 만들어낸 유럽 근대의 세계체제는 19세기에 이르러 우리를 파멸적 고난으로 몰아세웠다. 그 고난에서 구미의 체제와 철학을 수용함으로써 나름대로 이룩한 성취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와 민주주의적 사회 환경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정치·경제 체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표징은 흘러넘치고 있다. 이 경고는 근대의 실증적 체계를 극복하는 그 이상의 철학과 규범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 좁은 물질적 달콤함에 빠져 그 체제가 전부인 줄 알고 있다. 실증주의와 자유주의 철학의 한계는 파멸적 미래의 표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후위기, 과잉의 자본주의, 파열된 법치의 파행을 어떻게 넘어서려 하는가. 그 파행을 경고하고 성찰하면서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줘야 할 언론은 더 심한 당파성과 협소함에 빠져있다. 성찰적 지성은 어디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단지 이 사회의 맹목성을 추인하는 매몰된 현장에서 헤매고 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말할 자는 누구인가.
서구의 근대성은 선험적 규범의 세계를 벗어나 인간의 생물성을 잘 대변함으로써 짧은 시간 놀라운 물질적 성취를 이룩했다. 그에 뒤따라 어느 정도의 계몽적 가치를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경제체제가 그 대표적 성취이며, 과학기술이 이룩한 결과 역시 그런 철학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그 성취가 일면적이며, 그것이 인간과 생명, 자연과 세계가 가야 할 궁극의 길이 아님도 역사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거대담론이 우리와 무관한 것은 절대 아니다. 인간은 물질적으로 한계 지어져 있고, 실증적 조건에 매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그 한계와 조건성을 넘어, 인간다움의 길을 향해 초월해 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의 고난을 뚫고 어렵게 이룩한 성취가 인간을 위한 성취로 남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인간다움을 지켜낼 역사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체제를 성찰하고, 그 뒤에 있는 근대성을 감내하면서 극복해야 한다. 산업화 시대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않으면 결코 근대성의 폭력을 넘어설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맹목적 자유주의 철학에 매몰되어 그 작은 물질적 풍요를 탐닉하고 있다. 특권과 독점, 당파적 이익은 인간적 삶과 미래를 파멸로 이끌어갈 것이다. 찾아야 할 길은 찾지 않고 발밑에 놓인 달콤함만을 찾고 있다.
역사를 성찰하고 인간다움의 지평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인간과 생명의 본성을 재개념화하고, 세계와 문화의 의미를 일상에서 다시금 언어화해야 한다. 생명성과 미적 감수성을 회복하고, 인간다움의 연대와 공감을 새롭게 드러내야 한다. 이 새로운 길은 100년의 어두움을 뚫고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시간이다. 그 전환은 오로지 새로운 꿈을 꾸는 너와 나,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다. 필요한 것은 그를 위한 열정과 결단뿐이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