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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관심을 끌었던 건 정치인의 사면으로, 이광재 전 강원지사,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등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오랜만에 이뤄진 정치인 사면이라 언론의 관심도 컸다. 그중 최대 이슈는 '노무현의 남자' 이광재 전 지사에게 정치적 족쇄를 풀어준 것이다. 언론은 이를 총선 출마에 맞춘 '맞춤형' 사면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맞춤형'이란 말이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맞춤형 복지에서부터 맞춤형 여행, 맞춤형 교육, 맞춤형 고용. 맞춤형 통계에 이젠 맞춤형 사면까지. '맞춤'이란 말은 양복과 관련이 깊다. 양복점에서 옷감을 고르고 디자인을 정하고 치수를 잰 뒤 가봉을 거치면 멋진 양복이 완성된다. 비록 맞춤 양복은 기성복이 등장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멋쟁이들은 여전히 이 맞춤 방식을 고집한다. 개성이 중요시되는 시대이니 제품이나 정책이 소비자와 수요자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이어야 상품성도 높을 것이다.

지난해 말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의 최근 보도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경고를 받았다. '자기반성 없이 정부의 발목만 잡는 보수 야당에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문항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고약하다. 이 정도면 '맞춤형 문항'이요 '맞춤형 여론조사'다. 최고의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포진한 조사기관의 설문지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다. 공정과 객관성이 생명인 여론조사기관이 '자기반성 없이' '정부의 발목만 잡는 야당'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건 스스로 공정성을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다. 만일 방송사와 조사기관이 사전에 서로 입을 맞춘 '가봉'의 절차를 거쳤다면 이는 더 심각한 문제다. KBS는 사과했지만, 자유한국당은 KBS를 검찰에 고발했다.

여론조사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런 일이 터졌으니 불신은 더 커질 것이다.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여론조사기관이 100여개가 넘는다고 한다. 총선이 가까울수록 무자격 여론조사기관도 우후죽순 늘어나게 마련이다. 사실상 범죄행위인 이번 일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법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 '조작'에 가까운 '맞춤형' 조사는 여론을 왜곡하고 가짜뉴스를 남발한다.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사법기관의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