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001000994800050121

1972년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에 성공한 리처드 닉슨. 하지만 1973년 재임 임기가 시작되자 마자 그에게 지옥문, 워터게이트가 열렸다. 대선 국면 묻혔던 워터게이트 사건이 민주당 선거캠프 도청 의혹에서 대통령의 사건은폐 의혹으로 번지면서 초대형 정치스캔들로 변한 것이다. 상원특별위원회와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는 닉슨에게 은폐의혹의 증거인 백악관 비밀 녹음테이프 제출을 요구했고, 닉슨은 수사 주체인 콕스 특검 해임으로 맞대응한다. 이것이 민심 이반을 부른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엘리엇 리처드슨 법무장관은 닉슨의 콕스 해임 명령을 거부하고 사임한다. 대노한 닉슨은 장관대행이 된 윌리엄 러클하우스 차관에게 다시 명령하지만, 그 또한 거부하고 사임했다. 결국 대행의 대행인 로버트 보크 차관보의 명령이행으로 콕스는 해임됐다. 10월 20일 단 하루에 이루어진 이날 사태를 미 언론은 '토요일 밤의 대학살'로 보도했다. 이후에도 닉슨은 "대통령은 4년 동안은 루이 14세 같은 전제적 권한을 누리며, 따라서 그 어떤 사법절차에도 구애받지 않는다"며 버텼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도 헌법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문제의 녹음테이프가 제출되고, 닉슨은 결국 1974년 8월 자진사퇴했다.

야당이 '1.8 검찰대학살'로 비판한 새해 검찰인사의 후유증이 결국 상갓집에서 터지고 말았다. 최근 한 대검 간부의 장인상가에서 양석조 대검 반부패·강력부 선임연구관이 심재철 반부패·강력부장을 향해 "당신이 검사냐"고 고함친 사실이 알려졌다. 같은 부의 차장검사가 검사장을 들이받은 것이다. 심 부장은 앞서 조국 전 민정수석의 유재수 감찰무마의혹 사건을 무혐의 처리하자고 건의했다가 윤석열 총장에게 제지받은 사실이 알려졌고, 상가집 사단도 이 때문이었다.

윤석열 검사들과 대통령·추미애 검사들의 내전(內戰)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검사들을 잘라낸 인사가 부른 참극이다. 새로 임명된 심 부장이 조 전 수석의 무혐의를 주장한 것은 본격적인 검사내전의 서막일지 모른다. 물론 윤 총장이 불리하다. 그의 장관은 콕스 해임을 반대해 사임한 미 법무부 장관 대신 자신의 "명을 거역한다"고 호통치는 추 장관이다. 시간에 맡기며 소명을 다 할 수밖에 없다. 워터게이트 사건도 잿속에서 살아나 활활 타올랐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