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입 항상 바람직하진 않아
가격기능 방해하면 효율성 상실
북유럽, 시장경제 신뢰·조세 분배
좌파국가 아닌 보수·진보이념 공존
우선 성장의 문제를 보자. 인류의 역사에서 경제성장은 예외적인 사건이다. 수천 년간 경제성장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러나 대략 250년 전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후 인류는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그건 시장의 힘 때문이다. 산업혁명이 시장경제를 불러왔다기보다는 시장경제의 출현이 산업혁명을 일으켰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신분제와 권력, 전쟁이 분배를 결정하던 시대에는 지배자나 피지배자 모두 생산성 향상에 큰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지배자는 권력의 유지가 더 중요했고 피지배자는 더 일해 봐야 자신에게 돌아올 게 별로 없었다. 그러나 시장경제 내지는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완전하지는 않아도 시장에서의 기여와 성과가 비례하는 세상이 되자 사람들의 행동 양식이 변했다. 시장에 기여해야 자신의 몫이 커지기 때문이다. 시장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뿐만 아니라 경쟁을 촉진한다. 권력을 쟁취하려는 경쟁이 아니라 시장에서 구매자를 만족시키려는 경쟁을 촉진한다. 시장을 억누르면 결코 성장을 이룰 수 없다.
시장은 대체로 효율적이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공공재의 공급, 독과점, 외부성(예: 공해), 정보의 부족이나 비대칭 현상이 있으면 시장도 비효율적이다. 비효율적인 시장에는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개입이 항상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개입에도 집행비용이 발생한다. 그 비용이 시장을 고쳐서 얻는 이익보다 더 크다면 개입하지 않는 편이 낫다. 효율적인 시장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효율 못지않게 중요한 분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다만 여기서 분배의 불균등은 시장경제 또는 자본주의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지금의 북한이나 국민의 30~40%가 노비였던 조선 시대의 경제적 불평등을 상기해보라. 권력 구조가 분배를 결정하는 세상은 시장경제보다 훨씬 불평등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장이 분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므로 정부가 나서야 한다. 여기서 어떤 진보는 실수를 저지른다.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정서적 규범적 판단이 앞서서 대체로 효율적인 시장에 직접 개입해서 가격을 통제하고 규제를 하려 든다. 불행하게도 선의에서 출발한 정책이지만 게도 구럭도 놓치는 결과를 낳는다. 정부의 개입은 비효율적인 시장을 교정할 때 바람직하지만 효율적인 시장을 규제해 가격기능을 방해하면 파이 자체가 줄어 효율도 분배도 놓치게 된다. 시장에서 가격기능이 작동하도록 놔두고 사후적인 조세 및 재정정책으로 분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민주국가라면 분배의 수준은 다수 국민의 선택이 결정해야 한다. 분배 문제를 크게 개선하려면 즉 복지국가로 가려면 부자 증세나 핀셋 증세만으로는 재원조달이 어렵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소득세 누진성이 크고 대기업의 법인세도 높다. 그러나 OECD 주요국가의 복지 수준과 격차가 크다. 복지국가로 가려면 빈곤층을 제외한 모든 국민이 세금부담을 능력껏 떠안아야 한다.
흔히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를 좌파 국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피상적인 견해일 뿐이다. 시장경제를 신뢰하는 보수적인 이념과 조세정책에 의한 적극적 분배라는 진보적 이념이 공존하는 국가다. 이처럼 가만히 따져보면 보수와 진보의 정책적인 조합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시장경제를 맹신해서 비효율적인 시장의 결과도 그대로 고수하려는 우파와 시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직접 뛰어들어 분배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좌파가 눈에 더 많이 띈다.
/허동훈 인천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