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다르면 언쟁 '두개의 국민'으로 갈려
분열된 사회보다 더 무서운건 무너진 법치
靑, 하명수사 거부 등 민주주의 근간 부정
2018년 12월 국내 초판이 나올 때만 해도 이렇게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몰랐다. 이들은 '포퓰리즘과 손을 잡는 정치인과 정당' '경쟁자를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는 정치인' '언론을 공격하는 선출된 지도자' '의회를 패싱하고 행정명령을 남발하는 대통령' '국가기관을 여당인사로 채우고 비판적 언론을 명예훼손 소송으로 입을 막는 권력' 등을 민주주의의 위기를 알리는 구체적 신호로 제시한다. 명쾌하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놀랍다. 민주주의 위기가 세계적인 현상이라지만 우리 상황과 너무도 닮아서다.
연휴 기간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특히 이런 대목이 눈에 띈다. '독재정권은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 독재자는 헌법과 선거 시스템, 그리고 다양한 제도를 바꿈으로써 저항세력을 약화하고, 경쟁자에게 불리한 쪽으로 운동장을 기울인다.' 4+1 협의체를 앞세워 공수처법과 선거법을 통과시키고, 무소처럼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현 정권의 모습이 겹쳐진다. 하지만 이들은 처방도 제시한다.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막기 위해선 확고한 3권분립, 여기에 언론의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두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된 후, 전통의 미국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절박감에서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과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구분해 "토마토를 던지는 사람을 보거든 두들겨 패라. 소송비용은 내가 책임지겠다"면서 노골적으로 폭력을 선동했다. 입으로는 '국민'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만 쳐다보았다.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은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쓰레기통"이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그가 그럴수록 그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열광했고, 이제 그들을 등에 업고 트럼프는 재선을 노리고 있다.
설 연휴가 끝났다. 이번 설 밥상에 올라온 주제는 예상대로 '조국 사태'와 '윤석열의 검찰'이었지만, 더 우울한 징후는 서로 정치적 견해가 다른 두 부류로 확연하게 나뉘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조국사태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추석 때보다 더 심해졌다. 지난해 광화문과 서초동의 광장 정치를 보면서 이 역시 민주주의이고,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족, 친지, 친구 간 서로 생각이 다르면 아예 입을 꽉 다물었고, 대화가 이뤄져도 두 마디 이상 말하면 언쟁이 커지며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생겼다. 이미 우리 사회는 '두 개의 국민'으로 나뉜 것이다.
'두 개의 국민'이란 말을 처음 쓴 건 19세기 영국 총리 벤저민 디즈레일리였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의 여파로 심각한 빈부 격차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계층 간 갈등도 심했다. 이를 보고 개탄한 디즈데일리는 "영국은 '두 개의 국민'(two nations)으로 분열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통합 정책의 하나로 집권 6년 동안 공중위생과 노동조건을 개선하였고 국민교육법을 제정하였으며 선거권을 확대했다. 만일 디즈데일리가 자신을 지지한 한 쪽 국민만 바라보고 개혁정책을 펼쳤다면 '해가 지지 않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의 이름 앞에 '명재상'이란 칭호를 붙여주는 건 분열된 국민을 하나로 만든 그의 타고난 지도력 때문이다.
하지만 '두 개의 국민'으로 분열된 우리 사회보다 더 무서운 건, 무너진 법치다. 청와대 하명수사,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청와대가 거부했던 게 그 대표적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를 청와대가 대놓고 부정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벼랑 끝에 서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독서광이다.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 스스로 '활자 중독'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고백할 정도다. 휴가 때는 매일 한 권씩 읽는다고 한다. 문 대통령에게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일독을 권한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