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권리 주장 어려운 사람들도
도시의 주인으로 함께 살아가야
공동의 목적·필요를 가진 시민들
차별·배제없이 어우러질 집 꿈꾼다

새해 신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투기와의 전쟁을 언급하였다. 과거 아예 부동산에 대해 언급조차 않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보인 것에 비하면 달라진 것이다. 이제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민심을 어느 정도는 인지한 것 같다. 하지만 진정성 있는 개혁 의지가 결여된 정권마다 반복되는 익숙한 레토릭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여전히 주된 관심은 '시장의 안정'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시장이고, 누구를 위한 안정인가? 문제는 아무리 시장이 안정된다 한들 그 '시장'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라는 주택상품을 중심으로 '빚내서 집사라!' 일변도의 우리의 시장화된 주택정책은 집을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양극화를 심화시켰으며 집을 차별과 배제의 공간, 사회갈등, 주민갈등, 세대갈등의 진원지로 만들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공공에서 공급자 주도로 다양한 사회계층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소셜믹스 정책을 시도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집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만든 결과, 빚을 내어 집을 살 수도 없고 주거복지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 시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렇게 기존 주택시장에서 소외된 시민들을 위하여 사회주택과 공동체주택이라는 공공지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사회주택은 사회적경제 주체를 통해 공급되는 주거약자를 위한 사회임대주택(임대료 시세 80% 이하)으로 주로 청년 1인가구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사업성 위주로 입지가 선택됨에 따라 임대료 수준이 청년들에게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공동체주택은 획일화된 아파트 대신, 같은 관심과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거주하며 공동으로 생활문제를 해결하는 주택이다. 공동체주택 참여자들의 공동체소유(주택협동조합)를 위한 금융지원이 핵심이다. 어느 정도 지불능력을 요하기 때문에 주로 중산층 중장년세대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공지원 주택정책은 사회주택과 공동체주택으로 이원화됨에 따라 또다시 소유와 임대로 구분되며, 청년과 중장년 세대를 분리하는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나는 공동체주택을 통해 오랜 전세난민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는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의 10가구가 모여 공동의 건축주가 되어 자신의 필요에 맞는 집을 시장가격 보다 저렴하게 장만할 수 있었다. 개별 세대와 별도의 커뮤니티 공간을 설치하고, 공동체 규약을 마련해 입주자들이 소통하고 공동체 활동을 하는 주거 형태다. 공동체주택에 살아보니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빈부에 관계없이 다양한 시민들이 좋은 이웃으로 어울려 사는 것, 어쩌면 당연한 주거권이라고 생각되는 이 소망이 왜 어려운 걸까?"
우리는 어느덧 꿈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는 지금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집을 가진 사람과 집을 살 수 있는 사람만을 위한 주택정책은 사회적약자 및 소수자와 공존이 불가능한 도시를 만들어가고 있다. 도시의 주인은 건물주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 미래세대 등 자기권리를 제대로 주장하기 어려운 이들 또한 도시의 주인으로써 함께 살아갈 권리를 존중하고 보장하여야 한다. 공존할 수 있어야 우리의 도시라는 공동체가 미래에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 새해를 맞아 나는 꿈을 꾼다. 공동의 목적과 필요를 가진 시민들이 나이, 학력, 경제력 등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하거나 배제당하지 않고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모두의 집, 사회통합형 주택을 꿈꾼다.
토지는 공공에서 장기임대로 제공하고, 거주자로 구성된 주택협동조합이 사회적경제 주체들과 협력하여 건축과 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주택의 형태는 서민 중산층 자부담 참여자를 위한 코하우징과 주거약자를 위한 사회임대용 셰어하우스를 결합하여 진정한 소셜믹스가 가능하며, 지역에 개방된 커뮤니티 공간을 통해 지역의 공동체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