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을 관리하는 권력의 방식은 시대와 권력의 형태에 따라 변화했다. 고대에서 중세까지 시민권력이 부재하던 시대에는 감염성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철저하게 격리했다. 신도 외면한 문둥병(나병) 감염자들은 거주지에서 추방해 그들만의 소굴에 가둔 것이다. 13세기 기독교 세계 전체에 나병환자 격리장소가 1만9천개에 달했다는 사료는 권력이 나병환자 격리에 얼마나 철저했는지 보여준다.
중세말기 유럽 전제군주들은 질병에 걸린 백성들을 격리하는 대신 도시에 가둔 채 통제하고 감시하는 방식으로 전염병에 대처했다고 한다. 도시를 떠받치는 산업노동력을 무작정 격리할 수 없어서다. 페스트가 창궐하자 왕들은 도시의 백성들 명단을 만들어 매일 이들의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시신을 태우고, 감염자를 자택에 가두는 등 촘촘한 행정권을 발동했다. 백성의 생사여탈권을 쥔 전제군주들은 세원인 백성을 유지하기 위해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격리하거나, 모아 놓고 철저히 통제하는 전제적 권한을 행사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민권력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전제적 질병관리가 가능하지 않다. 우선 과거엔 하루 2㎞ 정도였던 전염병 전파속도가 지금은 수천㎞에 달한다.('바이러스 대습격' 발췌) 정보통신의 발달로 시민들은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정보 수집과 판단이 가능해졌다. 중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우한 폐렴) 발생지인 우한시를 봉쇄했지만 이미 500만명의 시민은 중국 전역과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다. 우한 봉쇄를 결정한 중국과 단박에 국경폐쇄를 선언한 북한은 공산당의 전제적 성향을 보여준다.
지금 국내에서도 국경 봉쇄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자는 국민청원에 서명한 국민이 29일 60만명에 육박했다. 상당수 국민들이 우한 폐렴 방지를 위한 가장 확실한 대책이 중국 국민에 대한 국경봉쇄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대표가 이를 '혐오' 논리로 반박하고 나섰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이 있다. 이런 상황일수록 한중 양국 국민의 혐오를 부추기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은 맞는데 동문서답이다. 국민이 제안한 국경 봉쇄 대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일이다. 난데 없이 외교적이고 도덕적인 수사로 국민을 훈계하고 나서는 바람에 정치적 논란을 자초했다. 청와대의 '우한 폐렴' 명칭 변경 요청도 불쏘시개가 됐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의 정치적 변종이 출현한 셈인가.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