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이 정실부인 된다는게 판타지
첩실이 된다는 결말이 더 현실적
차상찬의 '해동염사'는 한 술 더떠
'천하의 추녀에 관기의 딸' 주장도
'춘향전'은 국민적 고전답게 다양한 판본과 이본들이 존재하는데, 1917년 동창서옥(東昌書屋)에서 나온 '현토 한문춘향전'은 판소리계 한글소설과 전혀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현토춘향전'은 식자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답게 유교적 윤리의식과 도덕률에 철저하다. '춘향전'을 신분제에 대한 민중적 저항의 서사가 아니라 일부종사를 위해 목숨을 거는 열녀의 이야기로 탈바꿈시켜놓은 데다가 춘향은 수절의 대가로 이몽룡의 첩실이 된다. 한글 '춘향전'의 발랄함과 민중적 염원을 뒤로하고 아주 현실적이며 유교적인 방식으로 마무리된다. 어쩌면 엄혹한 신분제 사회에서 춘향이 정실부인이 된다는 것이 판타지이고, 첩실로 들어간다는 결말이 오히려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춘향이 작품 속의 가공인물이지만, 그 성격에 결혼생활은 순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콩깍지가 씌운 상태에서 분비되는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과 테스토스테론 등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면, 열정의 감정은 어느새 권태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바뀌게 된다. 뇌과학에서는 열정적 사랑의 유통기간을 호르몬이 분비되는 3년으로 보는데, 재결합 이후 이몽룡의 사랑도 예전 같지 않아질 테고 또 출신의 한계로 발생하는 문화적·계급적 차이에 따른 갈등으로 부부사이(?)가 원만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시인이자 잡지 편집자였던 청오 차상찬(1887~1946)의 '해동염사'(海東艶事, 1937)는 한 술 더 떠 춘향이를 아예 만고의 박색(薄色)에 관기의 딸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국의 여성사를 다룬 야사인 '해동염사'에 따르면, 춘향은 미녀가 아니라 "코는 지리병 같고 눈은 비탈에 돌아가는 도야지 눈 같고 머리는 몽당 빗자루 같고 목은 자라목 같고 몸집은 절구통 만한 데다가 그중에 마마를 몹시 한 탓으로 얽고 찍어매고 하여 박춘재(朴春載)의 곰보타령에 나오는 곰보 모양으로" 천하에 둘도 없는 추녀였다는 것이다. 그 박색 춘향이가 모친의 기지로 이몽룡과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은 뒤 그만 상사병이 도져 자결하여 원귀가 되었고, 그를 이몽룡이 해원(解冤)을 해주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이라는 것이다.
하루에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고 사는 게 우리지만, 정작 작품이 끝나면 사고도 함께 멈춰 버린다. 전후좌우의 맥락과 상하를 살피지 않고 텍스트가 만든 세계의 테두리에 그대로 갇혀 버리는 것이다. 사고의 프리퀄과 시퀄이 없는 것이다.
이따금 고전적 명작과 고서를 뒤적이는 것은 경직된 사고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또 삶의 고독과 피로를 치유하는데 제격이다. 부부관계가 예전 같지 않으며 자식들도 훌훌 다 떠나고, 사는 게 바빠 친구마저 만나지 못하는 갱년기 중년의 고독을 달래기 위해서는 TV나 음주 말고도 미쳐 지낼만한 한두 개의 취미가 있어야 한다. 행복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즐기는 것이라는 시인 조지훈(1920~1968)의 말대로 고서의 세계에 빠져 지내는 것도 삶의 고독과 인생의 무게를 견뎌내는 일책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