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설 골라 상 주면 그만이지
어떤 조항 붙는다면 문학상 불순해져
1926년 12월 창립 조선문예가협회
소속작가 스스로 정신노동자 규정
소시민 결벽성 탈피 경제투쟁 결의


월요논단 홍기돈2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얼마 전 이상문학상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우수상 수상자로 결정된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씨가 불공정한 조항을 지적하며 수상거부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수상자는 수상작의 저작권을 이상문학상 운영 출판사인 문학사상사 측에 3년간 양도해야 한다는 조항. 좋은 소설을 골라내서 상을 주면 그만이지, 여기에 어떤 조항이 따라붙는다면 그 순간 문학상은 불순해진다. 그런 점에서 이번 논란은 출판사의 불공정한 처사도 문제이겠고, 작가가 가지게 마련인 특유의 자존심을 자극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논란이 불거졌을 즈음 이기영에 관한 논문을 읽고 있었다. 이기영은 1926년 12월 25일 창립된 '조선문예가협회'에 참가하였다. 조선문예가협회는 잡지, 신문, 출판업자를 상대로 원고료 최저액을 결정하고자 했던 일종의 작가조합이었다. 조선문예가협회가 창립된 지 두어 달 지나 잡지 『현대평론』이 당국에 압수되어 삭제 처분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잡지사는 이를 이유로 여기 게재된 이기영의 「호외」에 대한 원고료 지급을 거부하였고, 조선문예가협회는 모든 회원의 『현대평론』기고 중지를 선언하며 맞섰다. 『현대평론』 측은 결국 조선문예가협회가 성명을 발표한 열흘 뒤 원고료 지급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문예가협회에 새삼 주목하게 되었던 까닭은 그네들의 지향이 현재 작가들에게 시사하는 바 있으리라 싶었기 때문이다. 조선문예가협회 소속 작가들은 스스로를 정신노동자로 규정하면서 소시민적 결벽성에서 탈피하여 경제 투쟁에 나설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니까 작가는 금전 문제로부터 초연해야 한다는 재래의 통념을 소시민적 결벽성으로 규정, 배격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억과 현진건을 제외한 조선문예가협회 발기인들이 모두 카프 소속 작가였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즉 그네들은 노동자로서의 당파성을 명확히 되새기는 계기로써 조선문예가협회 창립에 나섰던 셈이다.

기실 우리 사회에서 불공정 계약은 비일비재하게 널려 있다. 이상문학상 논란을 야기한 잘못된 규정 따위는 새삼스러울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논란은 많은 매체에 신속하게 보도되었다. 다른 경우와 달리 이들 작가들이 내몰렸던 조건은 쉽사리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셈인데, 이러한 대우는 작가에게 부여된 일종의 기득권이 작동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작가들이 잘못 대처했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작가들의 선택을 지지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행사할 수 있는 상징권력(기득권)을 적절하게 행사하였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그렇지만 이상문학상 관련 작가들이 조선문예가협회의 사례와 달리 느껴졌다는 점은 부기할 수 있겠다. 조선문예가협회 소속 작가들이 경제 투쟁을 통하여 무산자·노동자 계급과 함께할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던 반면, 이상문학상 논란의 경우엔 계약의 불공정 문제가 사회 전체에 팽배한 유사한 사안으로까지 나아가려는 경향이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 물론 이상문학상을 둘러싼 계약 문제는 돌발 사안이었기에 조선문예가협회의 경우와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엔 다소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이상문학상 논란이 작가 또한 각각 노동자, 시민이라는 자각을 확보하고 매개해나갈 계기가 되기에는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지난 2019년 한국과 일본이 역사·무역 문제로 심각하게 맞서고 있을 시기 『조선일보』 일본어판이 문제된 적 있었다. '일본의 한국 투자 1년대 -40%, 요즘 한국기업과 접촉도 꺼려'(7.4), '국채보상, 동학운동 1세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청와대'(7.15)라는 기사의 제목을 각각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 투자를 기대하나?(韓はどの面下げて日本の投資を期待すゐか?)",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국민의 반일감정에 불을 붙인 한국 청와대(解決策を提示せず國民の反日感情に火をつけゐ韓國大統領府)"로 바꾸어 일본어판에 게재하였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자 조선일보사에서는 해당 기사를 야후 재팬에서 삭제하였는데, 이는 사실관계와 다르게 분쟁의 책임을 한국 측으로 돌려세우는 행위가 분명하며, 언론의 사명과 동떨어진 정치행위에 불과할 따름이다. 당시 나는 이러한 생각을 했더랬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조선일보』에 기고할 테고, 동인문학상 받겠노라 줄을 서겠지?

만약 작가들이 스스로가 깨어있는 시민임을 충실하게 자각하고 있다면, 자신의 손아귀에 크든 작든 어느 정도의 상징권력(기득권)이 쥐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면, 과감하게 목소리를 모아 "안티조선"을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안티조선 운동'은 이상문학상 논란이 향후 작가들의 움직임에 어떤 계기로 작동하는 하나의 사례가 되는 셈이라고 하겠다. 2000년대 전반기의 안티조선 운동이 실패해버린 지점에 서서 예컨대 나는 그러한 가능성을 기대해본다.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