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중앙회장은 250만 농민을 대표한다. 임기 4년 단임제의 비상근 명예직이지만, 400조원 규모의 자산, 30개에 달하는 계열사 대표와 8만명 임직원의 실질 인사권을 행사하고 예산편성 및 집행, 감사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1천118개의 농·축협조합도 거느리고 있다. 그래서 농협중앙회장을 '농민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농협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농협은 올해 초 한 기업 평가사에서 발표한 국내 대기업집단 공정자산 순위에서 61조3천억원으로 10위를 차지했다. 신세계, KT, 한진, CJ 보다도 앞선다.
농협중앙회는 임명제로 회장을 선출하다 1988년 지역조합장들이 직접 선출하는 직선제를 도입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이던 2007년 12월 선거 때부터 간선제로 바뀌었다. 겉으론 비용을 절감하고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부정선거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지만, 결과적으론 이 전 대통령의 고교 후배가 회장으로 당선되면서 '이명박 후광'이라는 구설에 오르는 등 농협중앙회장 자리는 늘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다. 간선제로 치러지는 깜깜이 선거 탓에 직면한 농업 현안보다 지역 구도에 따른 판세에 끌려다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동안 경기지역에서는 역대 단 한 번도 회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영·호남이 권력을 나눠 갖는 정치구조와 대의원의 지역분포가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장 선거 대의원 수는 292명이다. 권역별로는 영남권이 90명, 호남권은 63명, 경기지역은 서울·인천까지 포함해도 겨우 54명이다. 영·호남에 비해 늘 열세였다. 최근까지 영·호남 출신이 각각 회장 자리에 올랐었다. 이번 24대 선거에 '호남 재집권론 vs 중부권 통합론'이란 말이 나온 것은 특정 지역이 자리를 독점하는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농협중앙회가 경기도 출신 '농민 대통령'을 맞게 됐다. 지난달 31일 치른 농협중앙회 회장 선거에서 이성희 전 성남 낙생농협 조합장이 당선됐다. 이 회장 개인적으로는 지난 선거의 아쉬운 패배를 딛고 일궈낸 값진 승리다. 이제 농협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당장 시급한 건 농업환경 악화를 극복하고 농가소득을 늘리는 것. 여기에 조합장 중심의 지배구조로 개편하고 중앙회장 선거 직선제 도입도 이 회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치권에 흔들리지 않는 농협이 되기를, 그래서 진짜 새 바람이 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