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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수없이 일어난다. 이탈리아의 '마니 풀리테'와 브라질의 '라바 자투'가 그런 경우다. '깨끗한 손'을 뜻하는 '마니 풀리테'는 1992년 이탈리아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해 벌인 '부정부패 척결작업'이다. 전체 국회의원의 25%인 177명이 조사를 받았고 4명의 전직 총리를 포함해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경제인 등 2천993명이 부패혐의로 체포됐다. "우리의 작업은 단순히 더러운 손을 솎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 사회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 투명하게 만드는 일종의 구조혁명"이라며 수사를 주도한 안토니오 피에트로 검사는 이탈리아 국민의 영웅이 됐다.

차량의 묵은 때를 말끔히 벗겨 내는 분사기처럼, 뇌물·돈세탁 등 불법으로 얼룩진 브라질의 썩은 정치를 뿌리 뽑겠다는 '라바 자투(Lava Jato·고압 분사기)' 일명 '세차작전'은 '국민 판사' 세르지우 모루가 주도했다. 브라질 파라나주 연방 판사였던 그는 '마니 풀리테'를 모델로 삼아 금융범죄관련 지식으로 무장한 검사와 경찰, 국세청 직원으로 '드림팀'을 꾸렸다. 그들의 표적은 한때 90%의 국민 지지를 받았던 룰라 전 대통령. 결국, 룰라는 불법 자금 및 자산은닉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국민은 성역 없는 수사를 외치던 이 열혈 판사에 열광했다. 현재 법무부 장관인 그는 2022년 브라질 대선의 유력한 대권 주자 후보다.

물론 이들의 수사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예비검속제' 폐지안으로 저항하자 검사 등 수사진과 판사들은 총사직을 내걸고 반대투쟁을 벌였고, 국민이 힘을 실어줬다. 덕분에 중선거구제가 소선거구제로 바뀌고, 비례대표제가 폐지됐다. 룰라 역시 호세프 대통령이 면책특권을 위해 장관직을 주려고 했지만, 사법부와 국민 저항에 부딪혀 이 역시 무산됐다. 모든 게 한 편의 영화처럼 전개됐다.

한 신문사의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 후보로 윤석열 검찰총장이 10.8%로 2위에 올랐다. 뜬금없는 조사와 발표에 국민과 정치권이 깜짝 놀라고 있다. 윤 총장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자신을 여론조사에서 빼 달라고 했지만, 국민들은 '윤석열'이란 이름이 왜 거론됐는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분위기다. '윤석열 현상'은 조국이 장관에 임명된 그 순간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현실은 때론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그것이 정치영화일 경우는 특히 그렇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