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내 주변 관계 유지
얼마나 잘하나'가 행복지수 가늠
깊은 고독·우울증에 시달린다면
친구관계 돌아보라고 말해줘
주저말고 서로 사랑나누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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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얼마 전에 회갑을 맞았습니다. 요즘에는 회갑이라고 해도 친지나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이지 않고 부부 동반, 혹은 친구끼리 여행을 간다고 합니다. 자녀들은 여행 경비를 드리는 것으로 회갑 선물을 대신합니다. 간혹 누가 회갑연을 한다고 하면 웬 구시대 유물이냐며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과 지인을 모두 불러다 잔치를 벌였습니다. 보통 사람도 아니고, 가난을 몸소 실천해야 하는 성직자가 무슨 호사를 누리겠다고 회갑잔치를 벌이느냐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초대장까지 만들어 보냈습니다. 다만 초대장엔 '선물은 사절, 회비만 받습니다'라는 문구를 적었습니다. 한마디로 회갑연이라고 해도 각자 회비 내고 밥 먹자는 얘기였죠.

회갑 잔치를 하지 않는 이유가 수명이 늘어서라고 합니다. 회갑을 맞는 게 전만큼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장수를 축하하려면 칠순, 아니 팔순은 돼야 한다고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부터 내려오는 이런 잔치들이 꼭 장수만을 축하하는 의미일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회갑, 칠순, 팔순은 물론이고 모든 생일은 반드시 많은 사람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일은 나와 사랑을 나눈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옛날에는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큰 의미가 되었지만, 100세 시대를 맞은 요즘의 생일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유대의 끈을 돈독히 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생일마저 혼자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SNS만 봐도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생일을 보낸다는 사연이 종종 눈에 띕니다. 사람들과 만나는 걸 번거로워하는 이도 있고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도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요? 혹시 나를 사랑해주는,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진정한 친구가 없는 건 아닐까요?

중국 사람들은 친구를 세 등급으로 나눈다고 합니다. 그저 아는 사이를 '친구', 관계를 맺은 지 3년 이상 되었고 서로 해를 끼칠 일이 없는 가까운 이를 '좋은 친구', 나를 대신해 감옥살이까지 해줄 사람을 '오랜 친구'라 부른다고 합니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이름들을 살펴보면, 우리도 이 기준으로 친구를 구별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생일에 혼자 보내지 마십시오. '좋은 친구'는 꼭, '오랜 친구'는 반드시 초대해서 잔치를 벌이시기 바랍니다. 바빠서, 혹은 부담을 주기 싫어서 생일 초대를 하지 않는 건 친구를 밀어내고 자신의 욕망을 선택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일 년 중 생일잔치에 몇 번이나 초대되고 있습니까? 설혹 초대받았더라도, 내 생일에 그를 초대한 적이 없다면 그 자리가 겸연쩍고 민망할 겁니다. 그러면 자연히 초대 자리를 피하게 되고, 친구 사이가 소원해집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좋은 친구'가 그냥 '친구'로 바뀌고, '친구'는 '남'이 될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들수록 행복지수를 가늠 짓는 결정적인 요인은 '나를 둘러싼 관계의 넓이와 깊이를 얼마나 잘 유지하고 키우느냐'입니다. 젊은 시절은 그저 자기 잘난 맛으로 행복지수를 올리며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인생은 고독해집니다. 이 고독이 깊어지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면과 우울을 호소하며 저를 찾아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친구 관계를 돌아보라고 말해줍니다. 친구들에게 소외된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 관계도 좋지 않습니다. 가족 관계는 사실 한 번 틀어지면 회복이 어렵습니다.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요. 그러나 친구 관계는 회복하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친구 관계를 먼저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 회갑 잔치의 제목은 '세 번째 스무 살 잔치'였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장수를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 사랑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이 친구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면서 늙어간다고 생각하니 나이 먹는 일이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되레 살아온 시간이 내게 이 사람들을 선물해주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생일잔치를 벌이고 사랑의 기쁨을 누리길 바랍니다.

/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