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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2월 9일, 공화당 여성당원대회가 열리는 미 웨스트버지니아 휠링시. 미 공화당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가 서류 뭉치를 흔들어 대며 "여기에는 국무성 안에서 암약하는 205명의 간첩 명단이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매카시의 이 폭탄선언은 미국 사회를 광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정치권과 학계는 물론 문화계 특히 할리우드가 받은 충격은 너무도 컸다. 미국인들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던 매카시즘은 이렇게 시작됐다.

영화계와 방송계의 작가·감독·연예인 가운데 324명이 공산주의자라는 멍에를 쓰고 일자리를 잃었다. 찰리 채플린은 공산주의자로 몰려 미국을 떠났고, 공산당원 출신의 거장 엘리아 카잔은 좌절과 고독, 회한 속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극작가 아서 밀러, 시나리오 작가 달톤 트럼보도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고통을 당했다.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온 '굿 나잇 앤 굿 럭(Good night and Good luck)'은 매카시즘이 극에 달했던 당시, 언론이 어떻게 이에 대처하는지 다룬 영화다. 2005년 작. 흑백영화다. 배우로서 최정점에 오른 조지 클루니가 감독을 맡아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굿 나잇 앤 굿 럭'은 당시 미국 CBS 방송 뉴스 앵커로 명성을 날린 에드워드 머로가 진행한 뉴스 다큐멘터리 쇼의 은유적인 클로징 멘트다. 온갖 압력에도 불구하고 정론을 굽히지 않았던 머로와 제작팀의 갈등과 고뇌를 그렸다.

유력한 정치가나 지식인들도 '빨갱이'로 몰릴까 감히 매카시에 대항하지 못하던 시절, 머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결연하게 '자유'를 외쳤던 언론인이었다. 흑백영화로 제작한 것은 희고 검은 두 색을 대비함으로써, 두 갈래로 나뉘어 이념전쟁을 벌였던 당시 아픈 과거를 떠올리면서 현실을 직시하라는 클루니 감독의 경고로 읽힌다. 이렇게 매카시의 광풍은 무려 4년이나 지속됐다.

하지만 기막힌 반전도 있다. 1990년대 소련 해체 이후 기밀문서가 하나씩 공개되면서 당시 매카시가 지목했던 미 고위관리들 일부가 진짜 소련 간첩으로 확인된 것이다. 매카시즘을 무분별한 '마녀사냥'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이래서 뒤집히는 역사는 늘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9일은 매카시의 광풍이 불어닥친 지 꼭 70년이 되는 날이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념 논쟁'과 '빨갱이' 논란이 낯설지 않은 우리에게 이날이 주는 교훈은 남다르다.

/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