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서정시는 독자들에게
따뜻하고 서늘한 '경험적 실감'
이재무 시집 '데스밸리…' 에도
엄마 음성·목련 조등… 찰나 포착
낮고 약한 인간 향한 위안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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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좋은 서정시는 경험적 실감을 독자들에게 한편 따뜻하고 한편 서늘하게 제공한다. 구체적 상황과 절실한 기억이 아름다운 이미지의 도움 아래 제 목소리를 드러낸다. 무의미한 난해함이나 의뭉스러움 저편에서 쓰여진 그러한 시는, 그래서 찰나적인 정서적 충격을 주고 시인에게나 독자에게나 어떤 발견의 순간을 허락한다. 최근 나온 이재무 시집 '데스밸리에서 죽다'에는 40년 가까이 이어져온 그의 이러한 시적 기율과 원리가 지속되면서도 어떤 점에서는 중요한 변곡점을 담고 있다. 기억할 만한 은유, 대상에 대한 간절함으로 낱낱 사물과 순간을 불러왔던 이재무는 이번 시집에서 자신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예감케 해준다. 특별히 그는 지난여름 데스밸리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시원(始原)' 곧 원초적 순수 생명의 세계를 발견한 경험을 들려주고 있는데, "내 지난날의 습기 많은 생을 묻었다"라면서 존재론적 전환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그렇다면 "습기 많은 생" 다음에는 어떤 차원이 펼쳐질까?

이번 시집에는 지상의 감각들이 그의 예민한 관찰에 의해 다양한 소리와 풍경으로 선연하게 되살아난다. 시인은 창으로 들어오는 빗소리나 '차갑고 투명해진 개울물 소리', '엄마의 음성', '개구리울음', '낙과처럼 떨어지는/종소리'에 귀 기울인다. 스스로의 서식처인 '고요의 마을'에서 '어쩌다 쓰는 시에도 소리가 들어와 울음 짓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평생 소리의 형태를 관찰하며 살아온 연장선에서 '매순간 태어났다 사라지는 소음들'도 소중하게 안아들이고 있다. 이 점, 이재무 시의 가장 살가운 성과로 나타난다. 착착 안겨온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지상의 감각에 머물지 않는다.

짧은 시 한 편을 읽어보자. "사회복지사가 다녀가고 겨우내 닫혀 있던 방문이 열리자 방 안 가득 고여 있던 냄새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무연고 노인에게는 상주도 문상객도 없었다 울타리 밖 소복한 여인 같은 목련이 조등을 내걸고 한 나흘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목련」) 이재무 시에는 낮고 약한 존재자들을 향한 위안의 목소리가 있다. 신이 버린 아프리카, 죄 없이 죽어간 인디언과 베트남 인민들, 노숙인과 무연고 노인을 향한 연민과 사랑이 있다. 이때 우리는 그의 시가 여전히 삶과 시대의 공공 기억에 닻을 내리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렇게 그는 한 편마다의 미학적 완결성을 중시하되 그것이 삶의 구체적 조건을 충실하게 반영하게끔 해왔고, 지금도 자연스럽게 시대의 내력을 환기하는 내러티브적 속성을 견지하고 있다. 거기서 우리는 '한 사람의 가난과 눈물과 추억과 참회와 낭만과 싸움과 연민과 사랑의 시편'(문태준)을 읽게 된다.

그러나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데스밸리에서 죽은 자신을 품고 넘으면서 '시간의 먼 길'을 떠난다. '안부가 그리운, 먼 곳의 사람'을 그리고, '먼 곳에 사는 정인에게 손 편지'를 쓰고, '저 멀리 돌아갈 집'을 아득하게 바라본다. 물론 그는 '60년째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니까 갑자기 초월적이고 환상적인 비현실의 세계로 비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죽음 너머 아버지로부터 저수지 얼었다는 전화를 받고, 죽기 전에 나무 열 그루를 심어야 하고, 또 데스밸리에서의 죽음 이후를 설계해야 하니, 나로서는 그가 기억과 유목 사이를 가로지르면서도 형이상학적 존재론으로 이끌려갈 가능성을 짐작해볼 뿐이다. 이재무 시의 중추인 간결한 서정성, 타자를 향한 연대, 시대와 사회의 증언, 사랑의 열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그의 후반기 시가 인간 존재에 대하여 더욱 두터워진 철학적 질문을 품어갈 것이라 생각해보는 것이다.

오래도록 공유된 순간 때문에 사사로움이 개입될 여지가 없지 않지만, 이처럼 나는 그의 시가 여전히, 하지만 새롭게, 경험의 구체적 재현과 타자를 향한 사랑과 근원을 향한 매혹 사이에서 반짝여갈 것이라고 믿는다. 누구보다도 고단하고 성실하게 '정성을 다해 쓰는 일'에 매진해온 그의 행로가, 슬픔을 머금은 글썽임으로, 그곳에서 하염없이 빛을 뿌리고 있을 것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