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개신교의 나라다.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면서 성경에 손을 얹고, 달러에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만큼 종교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나라도 드물다.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였던 존 F. 케네디가 대선에 뛰어들며 했던 가장 큰 고민도 종교 문제였다. "나는 가톨릭을 대표하여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은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종교와 정치의 선을 그은 것도 그래서다.
2008년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였던 밋 롬니 상원의원은 모르몬교도다. 선거를 앞둔 각종 여론조사에서 "모르몬 교인 대통령 후보에게는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할 정도로 종교는 그에게 큰 족쇄였다. '롬니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하면 대부분 국민이 '모르몬 교도'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역시 케네디가 그랬던 것처럼, 2008년 공화당 후보 경선을 앞두고 "나는 어떠한 교회의 독트린도 결코 대통령의 직무와 법의 권위 위에 놓지 않겠다"며 정·교 분리 선언을 했다. 주류사회의 거부감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 탄핵과정에서 공화당 의원 중 유일하게 롬니가 탄핵 찬성표를 던졌다. 이로써 롬니는 미국 정치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찬성표를 던진 여당 상원의원으로 기록됐다. 워싱턴포스트지는 "롬니 의원은 공화당에서 외로운 목소리를 냄으로써 역사에 자신의 발자국을 뚜렷이 남겼다"고 전했고, 뉴욕타임스도 "역사에 길이 기억될 것"이라고 전했다. "탄핵소추안에서 배심원 격인 우리 상원의원들이 헌법의 의무에 등을 돌린다면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며, 양심의 가책에서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표결 전 롬니가 울먹이며 했던 연설도 회자하고 있다.
롬니를 보면서 떠오른 장면이 있다. 지난해 말 더불어 민주당과 친여 군소정당들이 밀실협상을 통해 선거법에 이어 공수처법안을 강행처리 하면서 일사불란하게 찬성표를 던졌던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교섭단체 대표 협상이라는 국회법상 대원칙은 철저히 무시됐다. 헌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고 민주국가의 틀을 허물 가능성이 큰 법이 정상적인 국회 논의 과정도 없이 통과되는데도 이들 중 그 누구도 반대 목소리를 내는 국회의원은 없었다. 이는 대한민국 헌정사의 큰 수치로 기록될 것이다. '롬니의 한 표'가, 그래서 너무도 부럽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