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는 끝났다. 불은 꺼지고 사람들은 뿔뿔이 집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무려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아이리시 맨'은 왜 단 한 개의 오스카도 받지 못했을까. '택시 드라이버' '비열한 거리' 등 영화사에 길이 빛날 명작의 감독이자 뉴욕대학 영화학과 교수로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마틴. 하지만 제92회 아카데미는 그를 외면했다. 그나마 위안을 찾는다면 감독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수상소감 중 "마틴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 공부를 했다"는 헌사, 그로인한 기립박수 정도였을 것이다.
'기생충'의 기세에 눌리고 넷플릭스 영화라는 탓도 있지만, 굳이 이유 하나를 더 꼽는다면, 지난해 '마블영화'에 대해 쏟아낸 비판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에스콰이어지'와의 인터뷰에서 "마블영화는 테마파크에 가깝다. 인간의 감정이나 심리적인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려는 영화(cinema)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한술 더 떠 뉴욕타임스에 '마틴 스콜세지: 나는 마블 영화가 영화가 아니라고 말했다. 왜 그랬는지 설명해주겠다'는 기고문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나갔다'는 느낌이다.
물론 마틴의 발언에 동조하는 감독들도 등장했다. 론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멍청이 같다. 마블영화에서 사람들은 웃긴 슈트를 입고 뛰어다닌다"고 말했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도 "슈퍼히어로 영화는 문화적 학살"이라고 말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지적은 더 날카로웠다. "슈퍼 히어로 영화는 서부극 장르의 길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서부극 장르가 죽은 시대를 살고 있다. 서부극이 쇠락의 길을 걸었듯이 슈퍼 히어로 영화도 서부극과 같은 방식으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대세는 마블이라고 생각하는 팬들은 발끈했다. 이를 반영하듯 '버라이어티'지는 '아카데미 위원회의 젊은 회원들에게 반발을 살 것'이란 전망기사를 내놓았다. 이들이 마틴의 '아이리시 맨'에 우호적일 리 없으며 수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란 뜻이었다. 따지고 보면 지난해 마블 히어로 영화 '블랙 팬서'를 아카데미 최초로 작품상 후보에 올려놓은 것은 아카데미 젊은 세대들의 힘이 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스카는 마틴을 외면했고, 그 영예는 고스란히 '기생충'에게 돌아갔다. 자신을 버린 '아카데미의 변신'에 77세의 거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