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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에 요절한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예민하고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병균을 옮거나, 손가락이 다칠까 봐 아무하고나 악수를 하지 않았다. 피아노 선택도 까다로웠다. '굴드의 피아노'의 저자 케이티 헤프너는 '굴드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빛을 쏟아내는, 맑고 투명한 소리를 찾아 헤맸다'고 적었다. 그리고 마침내 스타인웨이앤드선스의 'CD 318'을 만났다. 굴드는 이 피아노를 자신의 손에 익숙하게 길들이는 데 7년이 걸렸다.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은 '피아노 들고 다니는 피아니스트'로 유명하다. 해외 공연마다 자신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물론, 전속 조율사까지 대동하는 '지구 최강의 까다로운 연주자'로 통한다. 2006년 미국 카네기홀 연주를 위해 뉴욕 JFK공항에 입국하려다 피아노를 폭발물로 의심한 세관의 착각으로 피아노가 심하게 부서지는 '사고'를 겪은 후, 피아노를 직접 분해한 뒤 현지에서 조립하고 조율까지 하며 사용했다. 이 모두 무결점에 가까운 연주를 선보이고 싶은 연주가들의 까다롭고 예민한 성격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연주가가 그런 건 아니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1960년대를 풍미했던 '현대의 리스트'라 불리던 리히테르는 달랐다. 71세였던 1986년 그는 홀로 자동차를 몰고 당시 레닌그라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역사적인 대륙 횡단 연주회를 가졌다. 작은 도시, 시골 마을도 그는 마다하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낡고 조율이 덜 된 피아노에서 감동의 선율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연주에 감동한 마을 사람들은 그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21세기 최고의 바흐 연주가인 피아니스트 안젤라 휴이트가 레코딩할 때 늘 사용하던 '파치올리 피아노'가 운반 과정에서 실수로 떨어뜨려 완전히 파손돼 그녀가 깊은 슬픔에 빠졌다는 소식이 요즘 클래식계의 화제다. 이탈리아 명가 파치올리가 제작한 F278로 페달이 네 개나 달린 세상에 단 한대 밖에 없는 피아노다. 악기는 연주가에게 육체의 연장이다. 좋은 악기에서는 좋은 소리가 나온다. 그렇다고 좋은 악기를 연주한다고 모두 좋은 연주가는 아니다. 볼품없는 악기도 연주가를 잘 만나면 명기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연주차 런던에 들렀다가 템즈 강가에서 거지 노인의 바이올린을 멋지게 연주했다는 파가니니나 허름한 피아노로 10명의 관객 앞에서 연주한 리히테르가 그런 경우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