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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미국 델라웨어 주 연방 법원은 운영자금 부족으로 파산을 신청한 '포에버 21' 매각 방안을 최종 승인했다. 지난 9월 파산신청 한 지 5개월 만이다. '포에버 21'은 1984년 무일푼의 장도원·장진숙 부부가 창업해 미 교포들 사이에선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던 유명 의류회사다. 한때 세계 57개국에 800개가 넘는 매장을 가질 정도로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대명사로 자리 잡을 만큼 성장했다. 2015년 매출이 44억 달러(약 5조 2천억 원)로 자라·H&M 등 세계적 브랜드를 누르고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 회사가 단돈 8천만 달러(1천억 원)에 넘어간 것이다.

'포에버 21'의 실패원인은 방만한 경영, 유사업체와의 경쟁 등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신규업체의 온라인 공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내에서 온라인 공세에 밀려 폐업한 오프라인 매장은 한둘이 아니다. 125년 전통의 미국 백화점 시어스, 100년 역사의 바니스 뉴욕도 영업을 중단했다. 미국 최대 완구점인 토이저러스, 저가 신발 유통업체 페이리스 슈소스, 아동의류 전문점 짐보리 등도 폐업에 동참했다. 이를 두고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소매업의 종말(retail apocalypse)'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포에버 21'이 파산신청을 냈던 지난해 9월 중소기업연구원이 '온라인 거래의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를 낸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보고서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도 급변하는 유통환경을 고려해 온라인 쇼핑산업으로 진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유통업의 흐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소매업의 종말'이라고 규정하고 '온라인 중심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유통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경영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경고가 현실이 됐다. 롯데쇼핑이 2~3년 이내에 백화점, 마트, 슈퍼 등 700여 곳의 오프라인 매장 중 200여 곳을 정리한다고 발표했다. 모든 게 온라인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데 너무 오랫동안 오프라인 시장에 머무른 게 롯데의 실적악화를 불렀다. 매장이 문을 닫으면 수천명의 일자리도 사라질 전망이다. 롯데의 이런 결정이 유통업계의 본격적인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소매업의 종말'이라는 불안한 징후가 우리 경제를 엄습하고 있다.

/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