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봉쇄 한 달 지난 '우한'
'지음' 백아·종자기 우정 자리한 곳
인류가 만나보지 못했던 바이러스
감염 우려로 인한 '혐오'를 멈추고
최선 다해 싸우는 이들을 응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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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나는 2009년 여름에 우한(武漢)에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우한은 내게 중국이 혼돈의 국가라는 인상을 남겼다. 고색창연한 고대의 유적과 현대식 마천루가 마주 보고 있었고 화려한 백화점과 이웃한 곳에 오래된 전통시장이 불을 밝히고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한마디로 전통과 현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혼재하는 불가사의한 도시라 하겠지만, 또한 내가 아는 우한은 가장 오래된 우정을 간직한 고장이기도 하다. 백아와 종자기의 우정이 깃든 고금대(古琴臺)가 자리한 곳이기 때문이다.

백아와 종자기의 우정은 동아시아에서 벗에 관한 가장 오래된 이야기다. 백아는 거문고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다. 그가 거문고를 타면 말들이 춤을 출 정도로 아름다운 연주였지만 동시대의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아가 산속에서 홀로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는데 나무꾼 종자기가 그곳을 지나다가 그의 연주를 듣게 되었다. 그때 마침 백아는 태산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는데 종자기가 듣고는 "훌륭하구나, 거문고 연주여! 태산처럼 높고 높구나!"라고 했다. 잠시 뒤에 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연주하자, 종자기가 또 말하길 "참으로 훌륭한 연주다. 넘실대는 것이 흐르는 물 같구나!"라고 했다. 백아는 비로소 자신의 음악을 알아듣는 벗을 만난 것이다.

종자기가 죽었을 때 백아는 자신의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어버렸다. 이후로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는데 이를 백아절현(伯牙絶絃,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버림)이라고 한다. 백아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거문고 연주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여기까지가 《여씨춘추》에 전해져오는 이야기이고 우한의 고금대는 이 두 사람이 우정을 나눈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날 때 백아가 연주한 두 곡이 고산곡(高山曲)과 유수곡(流水曲)이다. 이후 이 음악은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인들의 우정을 대표하는 곡이 되었고 이로부터 마음에 꼭 맞는 벗을 가리키는 지음지우(知音之友, 내가 연주하는 음악을 알아듣는 친구)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종자기가 죽으면서 두 사람의 우정은 끝났다고 여기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로부터 천여 년 뒤 당나라에 유학한 신라의 최치원은 비 내리는 가을밤에 등불을 밝히고 두 사람의 우정을 그리워했고, 18세기 조선의 박지원과 이덕무는 만약 벗이 있다면 높은 산(高山)과 흐르는 물(流水)에 자신의 마음을 담겠노라 노래했으며, 김정희와 전기는 그림 속에 두 사람의 우정을 그려 넣었다. 백아와 종자기의 우정은 한 시대나 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2천년도 더 된 긴 시간을 넘어 이웃나라까지 전해진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생하면서 두 사람의 우정이 깃든 유서 깊은 도시 우한이 중국 당국에 의해 봉쇄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우한을 오가던 항공편이 끊어지고, 기차 또한 우한의 주요 역을 무정차 통과하고 있으며 우한 주변에는 검문소가 들어서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넘어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죽는 일까지 일어나면서 우한 시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더욱이 감염을 우려하는 외부의 사람들에게 우한은 마치 바이러스의 온상처럼 여겨져 우한 사람을 혐오하는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

감염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로부터 감염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일은 나와 그가 같은 존재라는 생물학적 자기고백이다. 그렇다면 감염된 사람들을 혐오하는 것은 자기혐오와 다른 것이 아니다. 우한 밖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우한 시민들이 두려워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감염의 가능성은 혐오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함께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뿐이다. 우한이 안전해져야 우리가 사는 곳 또한 안전해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류가 이제껏 만난 적이 없는 새로운 감기바이러스로 이에 대한 대처는 전 인류의 문제다. 생물 분류상 단일종인 인류의 특성상 한 사람에게 위험한 것은 곧 인류 전체에게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최선을 다해 굳게 싸우고 있는 이들을 우정으로 응원하는 일이다. 너를 살려야 나도 사는 것이니 얼마나 절박한 우정인가.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