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수습한 줄리아니 前 뉴욕시장
항암제 먹어가며 안간힘… 전 세계 '감동'
첫 단추 잘못 끼운 코로나 사태 악화일로
정치 논리 싹 빼고 국민 생명부터 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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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주필
꼭 그럴 필요는 없었다. 107대 뉴욕시장을 지낸 루돌프 줄리아니에게 2001년은 시장 임기 마지막 해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대충 시간을 보내도 그를 비난할 사람은 없었다. 재임 중 뉴욕의 범죄조직을 소탕해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범죄율을 가장 많이 감소시킨 시장으로 이미 등재된 그였다. 한밤중 뉴욕 지하철을 자유롭게 탈 수 있게 된 것도, 한때 우범지역이었던 타임스퀘어가 전 세계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것도 그의 덕분이었다. 그것만으로 그의 업적은 충분했다.

9월 11일 아침. 뉴욕의 쌍둥이빌딩이 뉴욕시민들의 눈앞에서 무너졌다. 뉴욕 시민들이 공포에 휩싸인 순간, 사고현장에 가장 먼저 나타난 이가 있었으니, 온통 먼지를 뒤집어쓴 줄리아니 시장이었다. 그는 제일 먼저 뉴욕지역 방송사를 통해 사고 상황을 시민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했다. 우왕좌왕하는 시민들에게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덧붙였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시간별로 기자회견을 계속하면서 공포에 휩싸인 시민들이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그렇게 시민 곁에 있었다.

뉴욕시민들은 알고 있었다. 줄리아니가 지금 암 투병 중이었고, 항암제까지 먹어가며 아픈 몸을 이끌고 사태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임기 마지막 해, 온 힘을 다해 사태수습을 하려는 그의 모습은 뉴욕을 넘어, 미국 아니 전 세계에 감동을 줬다.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혼란스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사태를 수습하는 줄리아니를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위기 상황에서 솔선해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지도자의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코로나 19가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발생 한 달 만에 사망자와 확진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대구 경북지역을 넘어서 이젠 전국적으로 확산해 "머지않아 종식될 것. 일상으로 돌아가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무색하게 했다. 희망사항인 '종식'이 '증식'이 돼버린 꼴이 된 것이다. "중국은 이웃"이라는 등 감상적인 대응이 화를 불렀다. 그래서 우리는 궁금하다. 문 대통령은 "한국의 어려움은 우리의 어려움"이란 시진핑의 전화를 받았는가.

시작부터 잘못됐다. 마스크 300만장을 중국에 보낸다고 할 때 너무 나간다 싶었다. 집에 마스크 한 장 준비하지 못하고 있던 우리 국민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마침내 마스크 대란이 터지면서 정부가 우왕좌왕할 때, 뭔가 잘못돼 가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때라도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걸 알았으면 얼른 중단하고 다시 꿰어야 한다. 그걸 모르고 끝까지 가면 마지막 단추는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법이다. 단추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사람이 잘못이다. 지금이 꼭 그런 꼴이다. 국민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또 사진 한 장이 떠오른다. '기생충' 제작진을 청와대에 불러 짜파구리를 먹으며 파안대소하는 대통령 부부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 그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청와대가 무슨 생각으로 그 사진을 공개했는지 지금도 의문이지만, 불행히도 사진이 공개된 그 날부터, 코로나 19는 불꽃처럼 타올랐다. 사진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국민의 마음을 깊게 베었다. 5년 전 메르스 사태를 경험했던 우리였기에 아픔은 더 크다. 화도 난다. 국가적 재난도 지나고 나면 쉽게 잊는 한국인 집단 망각의 악습이 재현된 것 같아서 더 그렇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이제는 지금의 아픔을 또 잊어서는 안 된다.

줄리아니는 대통령도 아닌 그저 시장에 불과했다. 사태를 수습하면서 공화당, 민주당 편을 가르지도 않았다. 모든 사람의 죽음을 애통해 했다. 지금 우리에겐 그런 지도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 지도자가 꼭 대통령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질병관리본부장이 될 수도 있고, 자치 단체장이 될 수도 있고, 이름없는 어느 의사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정치적인 논리는 싹 빼야 한다. 제 잘났다고 떠드는 정치인들은 이제 모두 입을 다물길 바란다. 국민의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다.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공포도 극에 달하고 있다. 지금은 국민 생명을 살리는 게 먼저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절체절명 위기 상황에서 빛난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