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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7일 통화정책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1.25%로 동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내 확산이 급속도로 진행해 경제에 상당한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고조되면서 전격적인 금리인하가 나오리라는 전망도 부쩍 늘었지만 금통위가 신중한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서 "국내경제는 성장세가 약화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설비투자의 부진이 완화되었으나, 건설투자의 조정이 이어진 가운데 코로나19 확산의 영향으로 소비가 위축되고 수출이 둔화됐다"고 진단했다.

금통위는 "국내경제의 성장세가 완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상승압력이 낮은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되므로 통화정책의 완화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이 과정에서 코로나19의 확산 정도와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 가계부채 증가세 등 금융안정 상황의 변화 등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완화 정도의 조정 여부를 판단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결문을 종합하면 소비위축과 수출둔화 등을 경로로 국내 경제 성장세가 약화됐다고 보면서도 서둘러 금리인하로 대응하기보다는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좀더 지켜본 뒤 결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중론이었던 것으로 읽힌다.

코로나19 국내 확산에도 불구하고 이날 금통위의 동결 결정은 어느 정도 예견된 측면이 있다.

앞서 이주열 한은 총재는 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하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이 총재는 지난 14일 거시경제금융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추가 금리 인하 필요성은 효과도 효과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 또한 있기 때문에 이를 함께 고려해서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지금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로 확산할지, 지속기간이 얼마일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내경제 영향을 예단하기에는 아직은 이르고, 지표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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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시장은 이 총재 발언을 '2월 동결' 신호로 받아들였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12∼18일 채권 관련 종사자를 상대로 설문한 결과에서도 2월 동결을 예상한 응답자가 81%에 달했다.

하지만 이달 하순 들어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국내 확진자 수가 폭증하면서 시장에서 금리 인하 기대가 커졌지만, 금통위는 애초의 금리 인하 신중론을 바꾸지 않은 것이다.

대신 금통위는 이날 코로나19 피해업체에 대한 금융지원 확대를 위해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기존 25조원에서 30조원으로 5조원 증액하는 수준의 미시적인 조치만 내놨다.

금리 인하가 실제 경기하강 압력 둔화라는 효과로 이어질지 확실하지 않다는 평가도 금리를 내리는 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경제학회장)는 "이미 금리가 낮아진 상황에서 추가 금리 인하가 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란 판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경제 위기를 대비해 '실탄'을 확보해 두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고강도 규제를 통해 가까스로 막고 있는 집값 상승을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한은이 금리 인하에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코로나19 확산이 소비는 물론 투자, 수출 등 국내 경제 전방위에 걸쳐 타격을 가하는 게 속보 지표들에서 차례로 드러나고 있는 만큼 한은이 신중론을 펴다가 '실기(失期)'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고개를 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제 4월 인하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시각이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달 동결은 인하 시점을 4월로 연기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