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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세때 처음 내집을 갖게된 독신녀
집들이친구들 반응 대단해 축하해
근데 너 곧 퇴직? 대출금은 어쩌니
조카 챙기는것도 노후걱정 타박해
삶이 멋진데… '오지랖시선'은 그만


에세이 김서령1
김서령 소설가
서 부장은 한국 나이로 50세가 되었다. 집을 산 건 3년 전이다. 수도권의 30평대 아파트였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또래보다 집 장만이 늦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담하게 벌인 집들이 날, 친구들의 반응은 달랐다.

"뭐야, 완전 멋져. 네가 집을 사다니. 너무 놀랐잖아!"

"정말 대단해. 내 친구지만 진짜 기특하다. 축하해."

서 부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방대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 후 한 번도 쉬어본 적 없이 직장엘 다녔다. 그리고 마흔일곱 살이 되어 서울도 아닌, 작은 위성도시에 아파트를 샀는데 왜들 이렇게까지 놀라는 것일까. 서 부장은 고추잡채와 유부전골을 식탁에 날랐다. 맞춤제작을 한 아카시아나무 식탁은 아무리 봐도 색이 고왔다. 마음에 들었다.

"결혼 안 하고 혼자 산다 할 때 걱정 많이 했는데, 이렇게 잘 사는 거 보니 내가 다 기분이 좋네. 집도 너무 예쁘고."

"그런데 너도 곧 회사 나올 때 되지 않아? 대출금은 어떡해?"

아하, 그제야 서 부장은 친구들의 반응이 이해되었다. 결혼하지 않은 47세의 독거여성의 노후를 지금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서 부장의 친구들은 예의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사심 없이 집들이에 참석한 따뜻하고 다정한 친구들이었다.

"대출은 없어. 회사는 언젠간 그만두게 되겠지. 이후에 뭘 할는지는 고민 중이고."

대출이 없다는 말에 더 눈이 동그래진 친구들 앞에서 서 부장이 말했다.

"아이고, 별걸 갖고 다 놀라네. 한 사람 월급 갖고 세 식구 살고 두 사람 월급으로 네 식구가 사는 거랑 한 사람 월급 갖고 한 사람이 사는 거, 어느 편이 낫겠어? 이 간단한 계산법이 어려워?"

서 부장에게는 조카가 둘 있다. 조카들이 어릴 땐 자주 만나 소고기도 먹이고 그랬지만 이제는 제법 컸다고 이모 집에 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고기를 먹이는 대신 옷을 사보내고 가방을 사주고 운동화를 사준다. 학원비를 내줄 때도 있고 연수를 떠날 때 비용을 내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친구들이 타박을 했다.

"그런다고 걔들이 나중에 이모한테 효도할 것 같아? 네 앞길이나 챙겨. 100세 시대야. 노후 준비 제대로 못 하면 끝장이야. 돈 아껴."

한 달에 조카들 사교육비로 100만원, 200만원을 내주는 것도 아니고 이모가 생색 좀 내는 일에 무얼 그리 걱정을 하나, 생각했는데 나이 든 독거여성을 안쓰럽게 생각하는 시선은 참말 고칠 요량이 없다. 그래도 친구들이니 '안쓰러운' 정도이지 낯 모르는 사람에 이르자면 숫제 패배자 취급이다. 아이고, 불쌍해라. 나이 들어 새끼 하나 없이 외로워 어쩌나. 그들은 표정을 숨기지도 않았다. 서른 살엔 예쁘고 좋았지? 마흔 살만 해도 자유롭고 좋았지? 그런데 쉰 살 되니 너도 두렵지? 고독사할까 봐 겁나지? 그런 시선에 살이 따가울 때가 많다. 한 마디 한 마디 대꾸하기 싫어 그냥 하하 웃고 말지만.

서 부장은 우리 옆집에 산다. 가끔 나와 맥주를 마시고 고추잡채를 만들어준다. 서 부장 언니의 고추잡채 솜씨는 정말 끝내준다! 언니네 회사에서 만든 화장품을 늘 공짜로 갖다 주고, 사실 나는 과일을 살 필요가 없다. 언니가 박스째 사서 나에게 언제나 넉넉히 나누어주기 때문이다. 30대 독신들이 40대 독신으로 자라고 또 50대 독신으로 무럭무럭 자라 대한민국 세금의 한 축을 만든다는 걸 깨치고, 늦게라도 좋은 짝 만나 노후 편하게 보내라는 오지랖 따위 부리지 않는 그런 세상이 얼른 왔으면 싶다. 서 부장은 멋지다. 이대로 쉰 살이 되어서 더욱 멋지다.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