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입속에 감춘 칼과 같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은 칼이 되어 상대방의 마음을 벤다. 그래서 말로 받은 상처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는다. 손을 떠난 화살은 다시 잡을 수 없듯, 한 번 뱉어낸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말을 정치인들이 국민을 상대로 할 경우 상황이 복잡해진다. 아무리 실언이어도 정치적으로 해석되면 순식간에 '설화'가 되어 정치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판에 설화로 상처 입은 정치인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설화'는 '혀를 잘못 놀려 입는 화'다. 말을 먹고 사는 정치인들에게 설화는 늘 따라다닌다.
2002년 스승의 날에 서울의 한 여고를 찾은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인사말 도중에 "제게도 여러분 같은 빠순이가 많아요"라고 했다가 혼쭐이 났다. '오빠 부대'를 말한다는 게 술집여자를 뜻하는 '빠순이'로 실언한 것이다. 분위기를 잡으려고 했던 말이 독이 된 셈이다.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총선을 앞두고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 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했다 큰 파문을 불렀다. 이 노인폄하 발언은 정 의장의 정계 은퇴를 요구하는 시위로 이어졌고 결국 그는 모든 직에서 사퇴해야만 했다. 이 말은 정동영의 꼬리표가 됐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입조심'에 대한 속담은 차고 넘친다. 우리 속담에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는 말이 있다. 아랍에도 이와 유사한 '듣고 있으면 이득을 얻는다.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란 속담이 있다. 가능하면 좋은 말만 하고 웬만해선 입을 다물라는 소리다. 독일인들은 '진짜 암탉은 알을 낳고 나서 운다'는 속담을 즐겨 쓴다. 할 일은 제대로 하고 자랑은 나중에 상황을 봐서 하라는 의미다.
현실과 동떨어진 여권 인사의 실언이 코로나 사태에 불을 질렀다. '대구·경북 최대 봉쇄조치' 발언으로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대변인직을 사퇴한 데 이어 박광온 최고위원은 "확진자 수가 느는 것은 국가 시스템이 잘 작동한다는 의미"라고 했다가 곤욕을 치르는 중이다. 무엇보다 설화의 압권은 "코로나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이다. 책임을 국민에 돌리는 이 말은 장관 입에서 나와서는 결코 안 될 말이었다. 정치인들의 새털 처럼 가벼운 혀 놀림에 국민의 분노가 폭발 직전이다.
/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