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원인 생태계 파괴한 인간
사람 구원한다는 '맹목적 신앙'
신의 아름다움을 공포로 팔아
공동체 해체 죽음으로 몰아
지금이야말로 지성적 성찰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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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새벽같이 와닿은 호소문은 '대구 경북을 살려내라'고 외치고 있었다. 진보운동 가운데 가끔 얼굴을 마주했던 동료 교수의 글이다. 초중등 교육을 대구에서 마쳤고, 지금도 많은 친척과 지인이 대구에 살고 있기에 그 호소가 참 가슴 아프다. 그 안에 담긴 정부를 질타하는 매서움이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다른 한편 이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해 온몸을 던져 일하는 분들과 그럼에도 장악 가능한 상태에 놓인 현 상황을 돌아보면 나름의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바이러스는 우리 몸을 해치고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생물학적 바이러스가 생명을 위협한다면, 사회적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과 공동체를 해체시킨다. 그러나 그에 대한 두려움은 더 많은 증오와 탓을 만들어 우리 삶과 마음을 파괴한다. 중세 흑사병 사례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진실을 담고 있다. 알지 못하는 죽음의 그림자는 맹목적인 신앙과 증오를 부추기고, 이웃에서 마녀를 찾는다. 심지어 있지도 않은 자신의 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침내 몸이 무너지고 마음이 파괴된다. 있지도 않은 죽음의 유령이 존재를 파멸시킨다. 알지 못하면 두렵고 그 두려움은 알지 못하는 그만큼 커진다.

바이러스에 백신이란 치료약이 있어야 하듯이 무지의 바이러스에는 지성의 백신이 필요하다. 증오와 음모의 사회적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이웃 사람에 대한 신뢰와 공동체를 위한 공감의 백신이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몸의 요구와 정신의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몸이 생리적 조건을 채워야 살아갈 수 있듯이 마음과 정신은 그에 걸맞은 지성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지성은 전문지식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정신의 기본적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성이라 부르는 마음과 정신의 기능이 작동한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으며, 그 크기만큼 사람의 크기가 결정된다. 마음과 정신의 백신은 우리의 지성적 성찰을 떠나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누가 생물적 바이러스를 넘어 사회적 바이러스를 양산하고 있는가. 이 바이러스에 맹목적으로 휩쓸릴 때 우리 삶과 마음은 파괴되고 우리 존재는 해체된다. 자신들의 검은 이익을 위해 우리를 두려움으로 몰아가고, 사회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어두운 세력은 누구인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원인을 밝혀야 할 책임을 지닌 전문가와 언론이 오히려 이 두려움을 부추기고 있다. 사람을 구원한다는 종교가 앞장서 자신의 철 지난 교리를 강변한다. 신은 자연을 만들지만, 그 안에서 죽음의 병균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무지와 맹목이다. 신은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했지만, 인간은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세상을 검은 그림자로 뒤덮는다. 이 바이러스의 원인은 생태계를 파괴한 인간이며, 좁디좁은 정치적 이익을 노린 검은 언론과 맹목적 신앙, 파당적 정치세력이 아닌가. 신의 아름다움을 공포와 증오의 그림자로 바꿔놓은 그들이 원인이 아니란 말인가.

그들은 무한한 언론 자유를 누리고, 경제적 풍요를 독점하면서 나라가 재앙에 빠졌다고 앙앙거린다. 공동체를 해체하고 증오를 증폭하면서 신의 이름을 팔아 이익을 챙긴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면서 구원을 말한다.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을 딛고 만들어낸 나라의 풍요를 온갖 불법적 특권으로 독점하면서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간다. 정치의 시간이 다가왔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란 흑사병이 기회가 되었다. 우리의 위기를 그들은 정치의 기회로 활용한다.

그들은 누군가. 어려움이 닥칠 때 참된 친구가 다가오듯이, 무지와 두려움의 장막을 시간이 거둬 가면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 종교와 교회가, 그 신문과 정당이 누군지 똑똑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억하자. 그래서 그들을 몰아낼 수 있을 때, 그들이 부추긴 무지와 맹목의 어두움을 걷어낼 때 우리 삶과 공동체가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 100여년의 고통과 잘못을 반복할 수는 없다. 지성적 성찰은 정신을 지닌 인간의 의무다. 이것을 꼰대란 말로 폄훼하지 말라.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사회적 바이러스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