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해법 공론장' 기대했으나
국가·자본의 네트워크 개입 사유화
개개인은 의견 취합전에 편식·잡식
집단간 대화·토론부정 반민주공간
198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는 거대하고 중층적인 변화를 겪었다. 권위주의체제로부터 민주화된 직후부터 지구화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민주화 자체도 지구화의 한 흐름이었다. 그러나 지구화와 함께 대중들의 일상생활을 더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흐름은 정보화였다. 민주화를 성취한 한국인들은 정보화에 대해서도 진보적 낙관론을 가질 수 있었다. 권위주의체제의 폐쇄성, 즉 정보의 비대칭성이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데 결정적 장애였다고 생각하고, 정보화는 이러한 장애를 넘어서 정보로 무장한 민주적 시민들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배양할 거라고 기대했다. 심지어 자본주의체제의 불평등성도 기본적으로 노동자와 자본가 간 정보격차를 해소하면 완화될 수 있다고 믿었다.
민주주의와 미디어 간의 관계를 갈파한 미국의 언론학자 로버트 맥체스니는 '디지털 디스커넥트'라는 책에서 미디어는 더 이상 하버마스가 그렸던 '공론장'이 아니라고 말한다. 정부 간섭이나 통제로부터 벗어나 국가의 정책에 대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과 논쟁을 벌이는 공간이기를 멈추고 자본에 의해 사유화되고 소비자의 정보가 상품화되고 광고의 경제학이 지배하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인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보화사회의 꽃인 인터넷 역시 자본의 욕망과 국가권력의 통제가 투사되면서 민주적이고 자율적이고 사회적인 대중소통의 공간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즉, 정보화가 보다 풍요롭고 평등하게 정보를 공유하게 해줄 거라는 기대는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한 국가와 자본에 의해 분절된 사회인 미국에서 정보민주주의의 희망이 사라졌다면, 그나마 상대적으로 강한 사회를 지닌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정보화를 기반으로 네트워크로 연결된 민주주의를 이루었을까?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국가와 자본은 정보화사회의 네트워크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개입한다. 물론 정보화 자체의 왜곡 혹은 결함도 있다. 사이버공간의 압도적 이미지는 사적인 욕망과 기호가 분출하면서 정보의 경중과 정오를 가리기 힘들어진 정보의 쓰레기장이다. 대부분의 개인들은 정보를 취하기 전에 그 막대한 양에 압도당하고 만다. 전문성과 도덕성 등의 기준이 없는 그 공간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기호에 따라 편식하거나 잡식할 뿐이다. SNS 등으로 대표되는 정보화의 또 다른 특징은 이른바 '유유상종' 혹은 '호모필리(homophily)'이다. 카카오톡, 라인 등 다양한 DM(Direct Message)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트위터, 팟캐스트나 유튜브 등도 자유로운 공론장이기보다 비슷한 특성과 취향에 따라 모여서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공간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인터넷 공간은 일군의 사람들이 정보의 쓰레기장의 한 귀퉁이를 자신들의 영토로 선언하고 다른 집단간의 대화와 토론을 부정하는 반민주주의적 공간이 되고 있다.
정보화가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정보불균형을 해소하여 더 깊은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려면, 이에 덧붙여 집단간 소통과 타협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집단들은 국가와 자본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정보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집단간 격리와 균열을 더욱 확산시켜 '디지털 디스커넥트'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나아가 일부 시민들은 국가와 자본에 의해 분리되거나 동원되고, 나머지 시민들은 또다른 비집권 정치세력에 의해 동원되는 사회는 더 확신에 찬 '정보포퓰리즘'을 낳을 수 있다. 그 포퓰리즘 안에서 민주주의는 질식된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