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201000099900005671

영국 정부가 의회에 제출하는 정부보고서의 표지는 흰색이다. 정부보고서를 의미하는 백서(白書)의 유래다. 대부분의 국가가 국방백서, 외교백서, 경제백서, 산업통상백서를 정기적으로 발표한다. 아무래도 자국 중심적이고 정권의 국정홍보 기조를 벗어나기 힘들다. 북한 대남선전매체는 우리의 '2019 외교백서'에 대해 "미꾸라지국 먹고 용트림하는 격의 치적 자랑"이라고 비난했다. 반대로 우리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방위백서에 진저리를 친다.

해마다 국제기구, 각국 정부, 공공기관, 시민사회단체 등이 홍수처럼 백서를 쏟아낸다. 각종 환경 분야 백서는 인류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경고등을 켠 지 오래다. 백서는 이처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철저한 분석과 집단지성의 대안이 담길 때 의미를 갖는다. 일본과학기술진흥기구(JST)가 2005년 3월부터 무료로 공개하는 '실패 지식 데이터베이스'는 자국 내 모든 백서뿐 아니라 대구 지하철 화재 등 한국의 주요 사건 관련 보고서도 수록돼 있다. 실패의 공유로 더 큰 낭패를 막자는 지혜의 소산이다. 그런데 공식 보고서라는 백서의 표면적 공신력을 특별한 목적에 활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정부는 대형 사건·사고가 날 때마다 백서 발간을 만병통치약으로 내세운다. 지난해 정부와 지자체는 '산불 백서'를 내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야당인 당시 자유한국당은 '文 정부 불안백서'로 맞불을 놓았다.

최근엔 진보진영 일부 인사들의 '조국백서' 추진이 화제가 됐다. 순식간에 모인 3억원의 백서발간 후원금에 대한 한 진보 문인은 '조국 팔이'라고 비난했고, 여론조사기관 임원의 필진 참여도 논란이 됐다. 하지만 가장 상식적인 문제 제기는 재판도 안 끝난 사안에 대해 '백서'가 가능하냐는 대목과 정치적 편향에 대한 우려다.

하지만 반드시 남겨야 할 백서는 따로 있다. '2020 코로나19 백서'다. 2015년 질병관리본부가 발간한 '메르스 백서'가 무용지물이 된 대감염 사태에 속수무책인 현실은 차후에 절대 반복해선 안될 일이다. 2일 신천지교회 이만희 총회장이 국민과 정부에 두번 큰 절을 올리며 사죄했다. 비판의 표적과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릎을 꿇은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사죄로 코로나19가 해결될 리 없다. 국민은 코로나19의 확산과 정부, 정당, 시민사회단체의 대응을 날마다 체감하며 공과를 평가 중이다. 국민 집단지성이 '코로나19 백서'를 작성 중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