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기념 손목시계가 첫선을 보인 건 1969년 박정희 정권 때였다. 우리 기술로 개발에 성공한 전자시계를 알린다는 게 제작 이유였다. 박 대통령은 이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과 청와대에 초청된 새마을 지도자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봉황 휘장과 대통령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시계는 당시엔 신분과 권력의 상징이었다. 손목시계가 그리 흔치 않았던 시절이라 시계를 구하기 위해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고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계는 선거 때부터 뿌려져 1992년 대선 때 금권선거 논란까지 불렀다. 앞면에 이름을, 뒷면엔 '대도무문(大道無門)'을 모두 한자로 새긴 시계는 '영삼시계'로도 불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시에는 3종류의 시계가 제작됐다. 대통령 시계와 별도로 민간업체가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념해 2종류를 제작했다. 진품을 구하기가 어렵자 일부 업자들이 짝퉁 시계를 만들어 유통하다 경찰에 적발된 적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각형, 원형 두가지 손목시계를 제작해 청와대 방문자를 위한 기념품으로,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 상품으로 주었다. 시계 뒷면엔 '원칙과 신뢰, 새로운 대한민국'이란 문구를 새겨넣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계는 임기 초반에 대량 제작되는 역대 정권과는 달리 워낙 적은 수만 제작돼 구하기가 어려웠다. 시계 제작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박 전 대통령이 제작 개수, 비용 등을 직접 결재했기 때문이다. 당시 새누리당 관계자들이나 대통령 핵심지지 그룹 인사들도 시계를 받지 못했다. 시계 인심이 가장 박했던 대통령이란 소리를 듣는 이유다. 이렇게 역대 대통령 시계는 가격과 관계없이 손에 차고 있는 것만으로도 '권력' 취급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가짜가 만들어지고, 사기행각에 동원돼 사회적 물의를 빚는 경우도 있었다.
코로나 19사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자청했던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 대국민 기자 회견에서 '박근혜 시계'를 차고 나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기자회견을 본 박근혜 정부 인사들이 당시 금장시계를 만들지 않았다며 "시계는 가짜"라고 주장하면서 진위 논란으로 비화했다. 신천지와 통합당과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음모론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그가 왜 대통령 시계를 차고 나왔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찌 됐건 짝퉁 여부를 떠나 시계 하나로 나라가 온통 시끄러운 작금의 사태가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