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정당·후보자 소통과정인데
여전히 혈연·지연·학연 연고주의
이념에 몰입 '비합리적 선택' 씁쓸
공동체 가치 합의 선거문화 시급
자칫 이번 국회의원선거가 국민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채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지만, 출근길 가로(街路)에 걸려있는 '후보자등록 안내 설명회' 현수막을 볼 때마다, 도선관위 청사 입구에 설치된 전광판에서 '제21대 국회의원선거 D-○○일'을 확인할 때마다 선거가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실감하게 된다. 더욱이 필자에게 이번 선거는 지난 30여년간의 선거관리위원회 생활을 마무리하며 공직자로서 맞이하는 마지막 선거이기도 하기에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한 낯선 선거 풍경과 함께 그 감회와 각오가 사뭇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 30여년간 우리의 선거문화는 비록 더디지만 조금씩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성숙해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필자를 안타깝게 하는 것은 아직도 '정책선거' 문화가 우리 선거에 제 뿌리를 충분히 내리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책선거란 무엇인가?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정책선거를 '매니페스토(manifesto)'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매니페스토란 선거에 임하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유권자에 대한 계약으로써 구체적인 목표, 추진 우선순위, 이행방법, 이행기간, 재원조달방안을 명시한 공약을 말한다. 여기에 정책선거가 결합한 것이 '매니페스토 정책선거(manifesto policy voting)'이다. '매니페스토 정책선거'는 유권자가 정당·후보자의 공약을 비교하여 실현가능성이 가장 높은 공약을 많이 제시한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투표하고, 선거일 후 당선자는 선거 때 제시한 자신의 공약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며, 유권자는 당선자가 제시한 공약의 이행상황을 평가하여 차기 선거에서의 지지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즉, '매니페스토 정책선거'란 선거에서 유권자와 정당·후보자 간에 이루어지는 일련의 상호작용 과정, 다시 말해 선거에서의 유권자와 정당·후보자 간 동태적인 의사소통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선거풍토는 앞서 말한 정책선거의 과정이 아닌 혈연, 지연, 학연 등 각종 연고주의에 의하거나 과도한 이념에의 몰입에 기반한 비합리적 선택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씁쓸한 현실이다.
대의민주주의(代議民主主義) 정치체제에서 선거가 단순히 우리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와 정책의 방향을 합의하는 중대한 계기로 작동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앞서 말한 정책선거 문화의 온전한 정착 여부야말로 우리 선거문화의 성숙도를 평가하는 진정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모든 사회적 이슈의 블랙홀이 되어 버린 신종 코로나19로 인해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지난 몇 차례의 공직선거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리라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코로나19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과거의 숱한 위기와 시련을 결국엔 극복해 냈듯이 이번 선거 역시 '건강한 정책선거'로 온전히 꽃피워 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원봉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