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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은 끔찍한 유배의 공간이지만, 사람에 따라 자신의 철학을 피력하고 완성할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역사에 남을 수많은 저작이 감옥에서 쓰였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그람시에게 감옥은 창작의 공간이었다. 무솔리니 정권이 그에게 20년이란 장기형을 선고하며 "우리는 이 자의 두뇌를 작동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지만, 수형생활 10년째를 맞은 1937년 4월 숨을 거둘 때까지 그는 주옥같은 문체로 '감옥에서 보낸 편지'와 3천쪽에 이르는 '옥중수고'를 썼고 이는 20세기 위대한 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도의 독립 영웅이자 초대 총리 네루는 감옥에서 13살 된 외동딸 인디라 간디의 생일 선물로 장문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3년간 보낸 196통의 편지는 '세계사 편력'이란 이름으로 출간돼 지금도 읽히고 있다. 독일의 행동하는 신학자이자 목사인 본 회퍼가 히틀러 암살계획에 가담했다가 처형될 때까지 2년간 감옥에서 쓴 편지가 훗날 '옥중서신'으로 출간됐다. 나치의 지독한 검열로 글쓰기가 어렵자 은유나 추상적 표현이 편지를 가득 채웠다. "미친 운전자(히틀러)가 인도로 차를 몰아 질주한다면 그 미친 운전자 핸들을 빼앗아야 할 것이다."

"감옥에 오지 않았다면, 수많은 진리를 모른 채 죽었을 것"이라고 토로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청주교도소에 갇혀있는 동안 가족에게 29통의 편지를 보냈다. 이를 묶은 단행본 '김대중의 옥중서신'은 정치인이 아닌, '인간 김대중'의 모습을 부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한다는 고 신영복도 통혁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생활 중 자신에 대한 성찰과 사유를 담은 편지를 출옥 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제목으로 출간, 큰 인기를 끌었다.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이 전격 공개됐다. 3년여 옥중생활 중 보낸 첫 편지이자 총선을 40여 일 앞둔 상황이라 국민적 파장이 크다. 직접 지칭하지 않았지만, 거대 야당 중심의 단합 호소에 미래통합당은 고무된 모습이고, 여당과 진보 야당은 '선거 개입'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야 모두 이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할지 계산에 골몰하고 있다. 평가는 엇갈리지만 모든 옥중서신이 늘 그렇듯 지금 당장 잘잘못을 따지기는 어렵다. 우리는 지켜볼 뿐, 이에 대한 평가는 훗날 역사가 할 것이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