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집회 주도 전광훈 목사
진리 정답으로 알고 죽음 몰라
'구원 약속… 야외 무감염' 장담
진리·이념보다 삶의 가치 우선땐
코로나19 극복할 동력 만들어낼 것


월요논단 홍기돈2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대한민국 건국을 앞둔 1948년 상반기 문단에서는 김동리와 조연현의 논쟁이 벌어졌다. 김동리는 문학이란 구경적(究竟的) 삶의 추구라고 견해를 피력했던바, 이에 대하여 조연현이 종교와 문학의 경계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하고 나섰던 것이다. 김동리의 답변은 이러했다. 종교란 기원하고 귀의해야 할 신(神)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까닭에 의존적인 반면, 문학은 스스로 사색하고 상상하면서 신을 찾아 나서는 행위인 까닭에 주체적일 수밖에 없다.

김동리의 논리는 진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종교는 종종 진리(眞理)를 내세워서 다른 가치를 억압하곤 한다. 절대자에 의존하다 보니 결과론에 치우치는 경향을 드러낼 때도 있다. 예컨대 복덕(福德)을 기원하거나 현재 벌어진 사태를 신의 징벌로 수용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반면 문학은 주체적인 면모로 인하여 일리(一理)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또한 아무리 멀리 나아간들 작가는 결코 신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 작가에게는 결과가 아닌 과정이 중요하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종교가 극단으로 치우쳤을 때 문학의 자리에서 그 한계를 적극적으로 심문했던 작가로는 알베르 까뮈를 꼽을 수 있다. '이방인' 말미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신부(神父)에게 쏟아 부었던 발언이 대표적이다.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 오랑을 배경으로 삼는 '페스트'의 주동인물 리유 또한 마찬가지다. '페스트'에는 파늘루 신부가 등장하는데, 작품 앞부분에서 그는 페스트의 창궐을 죄의 대가라고 강연하고 있다.

"이 재앙이 처음으로 역사상에 나타났을 때, 그것은 신에게 대적한 자들을 쳐부수기 위해서였습니다. 애굽왕은 하느님의 영원한 뜻을 거역했는지라 페스트가 그를 굴복시켰습니다. 태초부터 신의 재앙은 오만한 자들과 눈먼 자들을 그 발아래 꿇어앉혔습니다. (중략) 반성할 때가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일에 하느님을 찾아뵙기만 하면 나머지 시간은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너 번 무릎을 꿇는 것으로 여러분의 그 죄스러운 무관심에 대한 대가를 하느님께 갚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미지근하지 않으십니다."

반면 신을 믿느냐는 물음에 의사(醫師) 리유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다.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나는 어둠 속에 있고, 거기서 뚜렷이 보려고 애쓴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전능한 신을 믿는다면 자기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일을 그만두고 그런 수고는 신에게 맡겨 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신을 믿는다는 파늘루까지도, 그런 식으로 신을 믿는 이는 없는데, 그 이유는 전적으로 자기를 포기하고 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며, 적어도 그 점에 있어서는 리유 자신도 이미 창조되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거부하며 투쟁으로써 진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삶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는 것이 리유의 입장이다. 파늘루의 맞은편에 자리하였으니 진리라고 했겠으나, 페스트 창궐에 맞선 의사로서 그의 활동은 일리라고 이해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어둠과 맞서는 리유에게 명확한 정답은 없었고, 다만 어둠을 건너가려는 나름의 헌신적인 도전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주위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방안을 모색하는 리유의 면모 또한 일리에 입각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관에 근사하지, 진리가 행사하기 쉬운 배타적인 폭력성과는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다.

문득 종교를 문학의 자리에서 바라보게 된 것은 신천지 때문이다. 광화문집회를 주도했던 전광훈 목사 때문이기도 하다. 그네들은 진리를 명확한 정답으로 손에 쥐고 있기에 존재가 딛고 있는 죽음(어둠)을 모른다. 그래서 감히 구원을 약속할 수 있고, "야외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라고 호언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존재가 딛고 선 죽음을 직시하면서 어떠한 진리·이념 따위보다 삶의 가치를 우선하는 편에 섰을 때, 이는 지극히 위태롭게 느껴질 따름이다. '페스트'에서 그러하였듯이, 창궐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극복할 동력은 후자의 편에 선 이들이 만들어낼 것이다.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