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권력과 싸우다 격리된
약자 입장 최후 저항 수단인데
탄핵된 박근혜 前대통령 메시지
실패한 정치인으로서 성찰 대신
훗날 기약하는 '정치적 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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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옥중서신(Captivity Epistles)의 문헌적 역사는 2천년 전 사도 바오로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그전에도 옥에 갇힌 인사가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한 사례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신약성서 가운데 네 편을 옥중서신으로 남긴 바오로에 이르러 그 원형이 마련되었다고 보아도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는 회심 전 모세의 율법에 열심이었고, 당대 최고 학자였던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한 유대인이었다. 예수를 핍박하다가 강렬한 빛에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고는 예수 앞에 무너졌다. 그 후 사도로 변신하여 선교하다가 옥중 생활을 겪으면서 서신을 남겼는데, 그 안에는 바오로 자신의 피압박 경험과 새로 얻은 소신들, 교회에 대한 권면을 담고 있었다.

옥중서신으로 유명한 또 한 사람은 독일의 사제였던 본회퍼일 것이다. 그는 나치스에 저항하고 히틀러 암살 계획을 세웠다가 체포되어 사형당한 분이다. 당시 독일은 히틀러를 옹호하는 교회와 하느님 중심을 부르짖은 교회로 분열되어 있었다. 본회퍼는 후자인 '고백교회'를 대표하는 신학자로서 신앙의 양심을 지켜 스위스 국경을 넘는 많은 유대인에게 도움을 주었고, 이차대전의 참상과 독일 교회의 현실을 알리는 운동을 지속했다. 일련의 저항, 체포, 죽음의 과정에서 본회퍼는 자신의 생각을 옥중서신의 형태로 남겨두었는데, 인간의 한계가 곧 신(神)의 역사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믿음으로 불의에 저항했던 그는 종전을 불과 몇 달 앞두고 눈을 감았다. 그의 죽음을 통해 사람들은 본회퍼의 길이 옥중서신에 적힌 대로 "낮아짐의 길이요, 고난의 길이기는 하지만 사랑과 용서의 길"이었음을 깊은 감동으로 알게 되었다.

우리 현대사에서도 1970~80년대 김대중의 옥중서신과 김지하나 김남주의 옥중시(詩)는 감옥보다 더 어두운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에게 역설적 광휘를 선사해준 사례들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수인(囚人)들은 잘못을 저지른 죄인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매인 역설적 자유인이었다. 특별히 김남주는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15년 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어 만 10년만에 풀려나온 '옥중시인'의 대명사다. 표현의 부자유와 열악한 환경을 생각하면 옥중시는 참으로 쓰기 어려운 것인데, 김남주는 권력에 대한 당당한 분노와 역설적으로 찾아온 따뜻한 희망을 동시에 노래한 탁월한 시인이었다. 한번 읽어보자. "사랑만이/겨울을 이기고/봄을 기다릴 줄 안다//사랑만이/불모의 땅을 갈아엎고/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릴 줄 안다//천년을 두고 오늘/봄의 언덕에/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그리고 가실을 끝낸 들에서/사랑만이/인간의 사랑만이/사과 하나 둘로 쪼개/나눠 가질 줄 안다"(사랑 1) 옥중에서 전한 소식이 이 정도니 정말 큰 그릇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옥중서신 혹은 옥중시는, 부당한 권력과 정의로운 싸움을 벌이다가 현실적으로 격리된 약자나 소수자의 입장에서 쓰게 되는 최후의 저항 수단이다. 그러니 그 안에는 글쓴이의 삶과 함께 그가 평생 추구해온 가치까지 자연스럽게 담기게 된다. 편지나 시를 읽는 이들은 그들의 한시적 부재를 통해 오히려 그들의 커다란 존재감을 깊은 울림으로 느끼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 역사에 옥중서신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측근 변호인을 통해 흘려보낸 글이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 세력의 일대 결집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처음 탄핵된 대통령으로서 스스로에 대한 성찰 대신, 현실 정치인으로서 잔광(殘光)을 뿌리면서 훗날을 기약하는 정치 행위를 재개한 것이다. 옥중서신의 역사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한 번쯤 물어야 한다. 그녀는 정의로운 싸움을 하다가 옥에 갇혔는가? 그녀는 부당하게 박해받는 저항 인사인가? 어쨌든 옥중서신의 역사는 오명 하나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녀의 옥중서신은 정의로운 약자도 아니고 탄압받는 소수자도 아닌, 스스로 탄핵을 불러온 실패한 정치인이 다시 지지세력 결집을 유도한 정치적 포고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다시 한 번 해야 한다. 박근혜는 왜 갇혔던가?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