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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이 마스크(Mask)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심란한 시절이다. 마스크는 얼굴을 가리는 도구인 가면이나 탈이다. 모든 문명권에서 일찌감치 사용된 가면에는 고유한 문화적 특성이 담겨있다. 조선 광대에게 탈이라는 은유적 매개가 없었다면, 감히 양반을 조롱하는 춤판을 벌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가면은 다양한 기능을 발휘한다. 악당을 처단하는 음지의 영웅 배트맨은 박쥐가면을 써야 완전하다. 프로레슬링에서 복면 레슬러는 대부분 악역이다. 김일이 혈투 끝에 복면을 벗겨 반칙왕의 실체를 드러냈을 때 열광했던 유년의 기억이 새삼스럽다. 인기 프로그램 '복면가왕'은 출연자가 복면을 벗었을 때의 반전이 클수록 시청률이 올라간다. 영화 '마스크'의 주인공은 마스크를 통해 신비한 능력을 얻는다. 선과 악의 상징, 극적 반전, 주술성 등 가면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문화예술적 영감은 무궁무진하다.

독재시절 수 많은 시위대가 마스크를 쓰고 체제에 저항했다. 최루탄의 고통을 피하기 위한 실리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당국의 보복을 피하기 위한 익면(匿面)의 수단이었다. 최근엔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는 세련된 시위대도 있지만, 마스크의 실용성엔 미치지 못한다. 마스크만 쓰고 침묵해도 권력은 불편해 한다. 반면 검·경의 수사를 받는 피의자들은 대중의 시선을 회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애용한다. 위생용 마스크가 정치, 사회적 가면의 기능을 발휘한 셈이다.

약국에서 파는 보건용 마스크가 코로나19 사태로 모처럼 만에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며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마스크가 없어 주5일제 배급이 시행 중이다. 코로나19 초기엔 마스크를 안쓰면 곧 큰일을 당할 것처럼 난리쳤던 정부다. 이젠 웬만하면 벗고 다녀도 된다며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솔선수범한다니 황당하다. 모교 후배들의 조국 퇴진 시위 마스크는 벗으라고 호통 치던 유시민은 "시장 원리가 안 되면 선착순이고, 그것도 불만이 많으면 배급제 말고 무슨 답이 있느냐"고 정부의 마스크 배급제를 옹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어제도 오늘도 주민등록증을 들고 약국 앞에 줄을 섰고 내일도 설 것이다. 정부는 웬만하면 벗어도 된다지만, 자기 몸 자신이 지켜야 할 국민은 계속 마스크를 쓸 테고, 마스크는 계속 부족할 터이다. 정부 눈에는 마스크를 쓴 국민 모두가 침묵의 시위자들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