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 문화계 원로가 안부 전화를 주셨다. "신문도 끊고 방송도 안 본다"고 했다. 코로나19 뉴스를 읽고 들어봐야 우울할 뿐이니 아예 딱 끊었다는 것이다. "잘하셨다"고 했다. 걱정이 깊어져 우울증이 생기면 면역력만 떨어진다. 단골 내과의사는 "의학적 대응이 마련될 때까지는 안 걸려야 하고 걸려도 몸이 견디도록 하는 게 최선"이란다. "그러려면 면역력을 유지해야 한다"며 "고기 많이 먹고 물 자주 마시고 푹 자라"고 신신당부했다.
인체는 세균과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즉각 면역체계를 가동하고 기동타격에 나선다. 면역 사령관은 백혈구다. 백혈구 휘하의 호중구, 대식세포는 악성 세균, 진균과 전투를 벌인다. 전투의 결과가 염증과 발열이다. 전투는 대부분 승리로 끝나지만, 패배하면 염증과 발열이 인체에 치명상을 입힌다. 역시 백혈구에 속한 NK세포와 T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발견해 죽이는 자살특공대다.
그런데 세균과 바이러스, 특히 바이러스는 교활하기 짝이 없다. 인체의 면역세포를 회피하려 수시로 변신한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면역세포를 감염시키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중국 전통극 변검처럼 순식간에 변장해 면역세포들의 검문검색을 통과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인플루엔자처럼 변신에 능해 사스, 메르스에 이어 이번엔 코로나19로 인류를 위협 중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예고편처럼 여겨져 각광받았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판데믹'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100년 전 수억명을 감염시켜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 같은 감염병 대유행의 재발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메시지가 맞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미 터져버린 시한폭탄이고, 바이러스의 변신 능력을 감안하면 언제 터질지 모를 팬데믹 시한폭탄이 줄줄이 대기 중인 셈이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도 있다. 코로나19도 무증상 감염자도 있고, 감염된 줄도 모르고 자연치유된 사람들도 있을 게 분명하다. 바이러스의 현란한 공세에 인체가 신비한 면역력으로 맞서고 있다는 증거다. 우선 바이러스 침입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면역력을 유지하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잘 자고 잘 먹고 우울증을 떨쳐내야 한다. 의료계가 백신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몸이 가장 확실한 코로나19 백신이다.
/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