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차면 대부분 공익 앞장서지만
기업등 일부 저급한 갑질 부끄러워
자리 차지하더니 변했단 말 듣거나
자신 이익위해 타인 희생시키기도
우한 총영사 부임 '희생' 모범답안

홍승표 시인·전 경기관광공사 사장
홍승표 시인
윤흥길의 소설 '완장' 주인공 종술은 동네 건달입니다. 빈둥거리던 그가 어느 갑부의 저수지를 관리하는 양어장 감시원이 됩니다. 일거리가 생긴 건 좋지만, 그가 차게 된 '완장'이 문제였지요. 사람들에게 고함을 지르거나 호통을 치고, 물고기를 몰래 잡던 동네 사람을 때리기도 합니다. 완장의 위력을 알게 된 그는 읍내에서도 '갑질'을 합니다.

갑질은 갑(甲)의 위치에서 을(乙)에게 일삼는 저급한 행태를 일컫지요. 그가 갑질을 하며 나대는 것은 최 사장이라는 뒷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나친 만행으로 완장을 박탈당하고 동네를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됩니다.

완장(腕章)은 자격이나 지위 등을 나타내지요. 보이거나 보이지 않게 완장을 찬 사람은 수없이 많습니다. 대부분 완장을 차면 사회 발전과 공익을 위해 정성을 다해 봉사하지만, 개중에는 감투를 앞세워 저급한 '갑질'을 부리기도 합니다. 기업에선 인사권을 쥔 간부의 행패가 심각하지요. '땅콩 회항' 사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동안 구체적으로 잘 몰랐던 갑질의 실상이 제대로 밝혀졌고, 그의 어머니마저 운전기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퍼부은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파장이 컸지요. 이러한 연유로 '갑질 신고센터'까지 생겼으니 정말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입니다.

완장에 걸맞은 품격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지요. 완장을 찼다고 반말을 일삼고, 인사 안 한다고 폭행하고, 뜬금없이 목소리를 높이며 거들먹거리고 이권에도 개입하고….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실감 납니다. 완장을 곧 권력으로 인식하니 '셀프 완장'도 생겨나지요. 골프장, 아파트, 물류단지 등이 들어서면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스스로 위원장 감투를 쓰고 행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민을 선동해 투쟁하고 발전기금 명목의 기부(?)를 받기도 하고 정치인으로 변신하기도 하지요. 완장을 차면 세상을 맘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착각 때문입니다.

완장은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완장을 찼을 때나 차지 않았을 때나 자신은 별다르게 행동한 것 같지 않은데 "자리를 차지하더니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완장 착용 전후가 달라진 게 없더라도 이렇듯 비판을 받기 쉽지요.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것이 완장의 숙명이거든요. 완장을 차게 된 초기에는 안 그랬던 사람도 예우를 받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완장에 대한 욕심이 많아지고 잘못되는 일도 생겨나지요. 완장에도 철학과 인격이 담겨 있는 만큼 높을수록, 많을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진 게 많은 것도 완장일 수 있지요. 부자라는 것 자체가 완장인데 사장이나 회장이랍시고 거들먹거리며 갑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중엔 종종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서슴지 않고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업보는 고스란히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얻는 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게 마련이고 그게 하늘의 섭리고 세상의 이치이지요. 남보다 가진 게 많다고 다른 사람을 깔보면 안 됩니다. 가진 게 적어도 잘 사는 사람이 많지요. 세상엔 돈보다 더 소중한 게 많은데, 그걸 모르면 사람 노릇 못 합니다.

공익을 위해 주어지는 완장의 상징성은 매우 크고 중요하지요. 중국 후베이성 우한(湖北省 武漢)에서 발원된 코로나 19로 지구촌이 온통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가 특별전세기를 보내 우한에 있던 자국인을 본국으로 귀국시켰던 것도 전염공포 때문이지요. 이런 판국에 우리나라의 우한 총영사가 부임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국가와 국민을 위해 기꺼이 희생과 봉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완장을 찰 자격이 있는 것이지요.

완장은 결코 권력이 아닙니다. 완장은 찰 사람이 차야 완장이 완장답게 쓰이고 세상이 바로 설 것입니다.

/홍승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