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가는 곳 조차 '까다로운'
언제나 올곧은 마지막 '선비' 모습
이권·속임수… 허깨비 같은 세상속
진실된 삶이란 무엇인지 되돌아봐

그러나, 들으니, 그 다음날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셨다고 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나와 댁으로 가시려던 계획도 실행치 못한 채 그만 유명을 달리하셨다고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호스피스 병동 출입을 엄격히 금한다고, 간호사가 쫓아와 자꾸 독촉하는 바람에 단 2분여 뵌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허망하고 안타까울 수가 없다.
선생님의 말기암 투병기간은 그래도 짧지만은 않으셨던 것 같다. 2018년 8월 말에 당신께 그런 악독한 병종이 자리를 잡은 사실을 뒤늦게 아셨다. 항암투병에서 호스피스 병동에 드시기까지 1년6개월여를 굳세게 삶의 의지를 불태우셨다.
낮에 대전에서 소식을 듣고 서울로 올라와 급한 일들을 되는 대로 해치우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저녁 일곱시가 넘어서였다. 차를 바로 앞 주차장에 세우지 못하고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려 하니 체온 재고 출입기록관리하는 사람이 마스크를 가져왔느냐고 묻는다. 몹시 허둥대는 바람에 차 안에 마스크를 버려두고 뛰듯이 서둘렀던 것이다.
이날 따라 바람은 왜 이렇게 맵찬지, 서울 상경 길부터 이십 년래 처음 겪어보는 강풍이었다. 두 번 걸음으로 마스크를 가져오는데 거센 바람이 허술한 옷 속으로 사정없이 밀려들었다. 겨우 마스크를 쓰고 체온을 재고 기록을 남기고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신 빈소로 향했다.
흰 국화 한 송이를 바치고 절을 드리는데도 슬픔이고 뭐고 느낄 겨를이 없다가 낮에 소식 전해 주신 분을 뵙자 그때야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코로나19든 뭐든 선후배들 오신 분들과 앉아 생전의 선생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조문객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을까. 하기는 당장 오늘 낮에 전해진 소식이고 하필이면 코로나19라고 병원, 장례식장은 특히들 꺼리는 시절이다.
선생님은 양산 사람으로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 입학과 더불어 상경 이래 서울 사람이 되시다시피 했지만 지금껏 부산 사람의 기질과 정서를 잃어버리지 않으신 분이었다. 사투리도 사투리지만, 세상살이의 태도에 엄격하고 먹는 것, 가는 곳을 고르는데 언제나 '까다로우신' 그 변함없는 태도는 당신이 이 땅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멸종 위기 '선비'족의 일원임을 증명하고도 남았다.
이기영이라고, 저 일제 강점기에 이름 높던 카프 작가, 덕수 이씨 이순신 장군의 12대 지손이었던 그를 가계도까지 그려내며 연구하신 '진보파'였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 들어서서는 안 되는 길에는 손도 발도 대지 않는 그 엄격함은 당신을 차라리 '보수' 본당이라 여겨야 맞을 것도 같았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나는 경직된 '만능' 이분법을 지독히도 혐오해 마지 않는다.
평소 세상에 대해서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단순하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배경과 맥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밝히고서야 왜 그 일이 그런 뜻을 갖는지 하는 결론을 말씀하실 때쯤이면 듣던 우리 모두 지쳐 나자빠지고야 말, 별명이 '지하철 2호선', 순환선인 분이셨다.
그러셨건만 삶의 막바지에 이르셔서는 '시원스럽게' 탁탁 말씀하셔서 맞장구쳐 드리기 좋았다. 코로나19에, 선거에, 정부에, 아무개에, 경제에, 눌러두셨던 판단들을 다 드러내셨지만 이미 너무 오래 담아두기만 한 날카로운 생각들이셨다.
한밤에 늦게 장례식장을 나오는데, 삶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생각한다.
선거에, 명분에, 이권에, 속임수에, 겉과 속 다른 온갖 일들이 한순간도 지치지 않고 이어지는 이 허깨비 같은 거품 세상.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진실을, 진짜를 귀하게 여겨 볼 수는 없을까.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