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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골칫거리였다. 구약성서 신명기에 '이웃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지 말라'는 구절이 나올 정도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상거래 가운데 가장 혐오스러운 것은 '금리를 취할 목적으로 대출해주는 행위'로 보았다.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는 이자를 '가장 큰 죄악 15개 항목' 중 하나로 규정했다. 농경생활시대부터 존재한 이자를 아예 금지하기보다 고리대금으로 인한 부의 편중 심화를 경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최초의 성문법전인 고대바빌로니아 함무라비에는 곡식 이자율의 최고한도를 연 33.33%로, 기원전 로마 12표법에 모든 대출 이자율을 연 8.33% 수준으로 정한 것만 봐도 그렇다.

금리에 대한 최고의 문헌으로 평가받는 리처드 실라의 '금리의 역사'(리딩리더 간)를 보면, 고대 바빌로니아와 그리스, 로마시대에 문화가 번성하는 시기에는 이자율이 낮고, 쇠퇴하거나 망하는 시기에는 이자율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고 적고 있다. 또 시간적 차원에서 볼 때 금리의 흐름에는 일정한 추세와 반복적 변동 패턴이 있으며 이런 현상은 한 국가와 전체 문명의 흥망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자율이 낮으면 무엇보다 소비자들은 이자율이 높을 때에 비해 더 많이 지출한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일본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보통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특징으로 저성장·저물가·저금리를 꼽는다. 1990년대 초 일본 경제는 자산 거품이 꺼지면서 장기불황에 빠졌다. 처음 10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고작 0.8%에 그쳤다.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0%를 기록했고, 국채금리는 오히려 마이너스권에 머물렀다. 보통 금리가 낮아지면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고, 경제가 성장하고, 다시 물가가 오르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은행에만 돈을 맡겼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소비가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났다. 저금리가 지갑을 더 닫게 한 것이다. 코로나 19 전 세계 확산으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0.75%로 인하하면서 우리도 '0%대 금리시대'가 열렸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문제는 최근 글로벌 증시급락이 유동성 문제가 아니어서 금리 인하 효과를 볼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성장률, 물가, 금리가 제로 수준이면 이를 '3저 불황'이라 부른다. 0%대 금리가 실현되면서 일본이 걸었던 그 길을 우리가 걷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