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블라디미르 푸틴은 '위험 불감증' 환자였다고 한다. 구소련 KGB에 들어가 강도 높은 훈련과 고도의 심리전을 배워서인지 위험을 모르고 매사에 자신감이 있었다. KGB 비밀 파일에 푸틴의 단점을 '겁 없음'이라 적을 정도로 모든 게 거침이 없었다. 이런 강한 추진력은 푸틴의 큰 재산이었다. 1996년 대통령 총무실 부실장으로 크렘린에 입성한 지 불과 4년 만에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 자리를 꿰찼다.
대통령이 된 푸틴이 가장 먼저 한 건 강한 러시아를 만드는 것이었다. 구소련 붕괴 후 바닥까지 떨어진 경제를 회복하고 강대국으로의 복귀는 푸틴의 지상과제였다. 이런 푸틴의 모습에 국민은 열광했다. 실제 2000~2008년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이 4배, 수출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원유의 탓도 있지만 외환보유액도 크게 늘었고 주가도 폭등했다.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2008년 1차 임기를 마친 푸틴은 70~80%의 높은 국민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정치적 제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제1 부총리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줬다. 하지만 이는 연임을 회피하기 위한 합법적 꼼수였다. 2012년 대통령으로 복귀한 푸틴은 임기를 6년으로 늘려 3선을 하고 2018년 4선에 성공해 오는 2024년까지 재임할 수 있다.
나는 새를 떨어뜨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푸틴이지만 그래도 장기집권을 위해서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푸틴이 추진 중인 헌법 개정안이 지난주 러시아 상·하원 심의를 통과했다. 개헌안은 오는 2024년 임기를 마치는 푸틴 대통령의 재선 출마를 위해 기존 임기들을 백지화하는 내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다음 달 개헌안이 국민투표로 통과하면 푸틴은 두 차례 더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승리는 떼어 놓은 당상이고 임기가 6년이니 2036년 그의 나이 83살까지 집권할 수 있다는 얘기다. "푸틴은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말이 이래서 나왔다.
그동안 러시아는 레닌, 스탈린,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옐친 등 절대권력의 지도자들이 이끌어왔다. 하지만 그들도 푸틴처럼 꼼수를 내세워 장기집권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주가폭락의 한 원인인 이번 미·러·사우디 간의 원유전쟁도 국민에게 '강한 러시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푸틴의 '장기집권 플랜'중 하나다. 지금 푸틴은 겁이 없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