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
이기영 경기도공공기관 노동조합총연맹 의장
익숙한 평형이 망가지는 시점은 사람이나 체제가 변하는 동인이 되기도 한다. 그 역도 맞다. 균형이 깨지는 순간 앞에서 인간은, 체제나 제도는 그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누구는 그걸 위기라고도 부르고 누군 그걸 상처라고 부른다. 코로나19사태는 위기이고 상처다. 세상은 멈춰버린 것처럼 거리 두기에 들어갔고 경제는 급랭 상태에 빠졌다. 현장의 중소기업인들은 IMF때보다 심각하다고 말한다. 혐오와 불신도 우리가 본 풍경이다. 대구·경북사람, 신천지 교인들, 중국인을 향해 사람들은 편견과 가짜 뉴스를 이유로 비난을 쏟아냈다. 총체적 위기다. 이 위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가족돌봄휴직과 재택근무를 가능하게 한 건 오랜 기간 쌓은 인권의식과 노동운동의 결과다. 복지부동이라고 비난받던 공무원들은 단일한 명령 체계서 일사불란하게 행정권을 집행한다. 위기상황은 일선에서 확진자 동선을 안내하고 방역에 나선 공무원들이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공직자가 된 청년들이었단 걸 확인시켜준다. 인재들이 죄다 의대로 간다며 볼멘소리한 사람들이 있지만, 그 똑똑한 인재들이 세계적으로 칭송받는 한국의 방역체계를 만들었다. 하이퍼라고 불러도 좋을 테크놀로지들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위기 속에서 전염병으로부터 그야말로 다이나믹하게 국민들을 지켜내고 있다. 코로나19는, 위기는 어쩌면 우리에게 희망을 가르치고 있다.

또 다른 희망은 코로나19란 상처 속에서 시민 스스로가 서로를 보듬으며 공동체를 회복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마스크 5부제 이전 들었던 예화. 마스크를 받기 위해 사람들은 손등에 번호를 써주고 하고 줄을 서 기다린다. 누군가 자기 손등 위에 다른 번호를 쓰고 새치기를 시도한다. 처음 번호를 써준 사람이 필체가 다른 걸 확인했지만, 거꾸로 자기 번호를 양보하기로 한다. 폭력 사건이라도 일어날 법한 상황은 양보의 미덕이 제압한다. 다음 장면은 감동적이다. 양보를 목격한 시민들은 구하기 힘든 마스크를 내놓는다. 무엇이 미담을 가능하게 하는가.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 힘이다. 이해와 배려의 마음, 공동체를 향한 믿음의 힘이다.

의료인과 질병관리본부를 향한 응원, 공무원을 향한 응원의 말들, 대구 시민들을 돕겠다는 도움의 손길, 의사들의 봉사활동은 어떤가. 냉소적인 체하면 할 말이야 많다. 지역 확산을 초기에 잡지 못했다며 질병관리본부를 탓하고, 대한민국 의사 중에 고작 수백 명 정도가 나섰다는 둥, SNS에 응원글 올리면 감염병이 사라지느냐는 시큰둥한 말들도 못 할 말은 아니다. 시민들은 냉소에 반응하지 않는다. 냉소 대신 응원을, 비난 대신 지지를 내보인 게 우리 시민들이다. 그것이 시민과 공동체의 힘이자 우리 스스로 알지 못했거나 잊었던, 우리의 진실한 맨 얼굴이다.

우리 사회는 '97년 체제'를 거치며 신뢰를 불신으로, 양보를 경쟁으로 바꾸는 세상을 살게 됐다. 대학입학시험 한두 문제 차이가 대학의 간판을 바꾸고 달라진 학교 이름은 그들이 들어갈 직장의 안정성과 급여를 바꾼다. 시간이 갈수록 차이는 극명해진다. 소위 신자유주의적 삶의 양식들은 견제와 경쟁, 불신과 협잡, 그리고 비겁한 자기 보호를 우월한 삶의 양태인 양 가르치는 세상을 만나게 했다. 그런데 정작 마주한 위기 속에서 시민은 불신과 경쟁 대신 신뢰와 양보를, 자기 보호 대신 헌신과 자기 희생의 모습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현대사를 채운 상처의 시간을 지나며 우리 자신들의 의미를 평가절하했는지 모른다. 이번 사태는 우리가 살아가는 풍경을 몇 개쯤 바꿔 놓을 것이다. 나는 그 풍경들 속에 우리가 발견한 스스로의 가치들을 조금 더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이 함께 하길 바란다. 이웃과 공동체를 향한 관심과 애정의 마음이 있었다는 걸 믿을 수 있길 바란다. 신뢰와 양보, 헌신과 희생이 우리 안에 있다는 걸 잊지 않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공동체를 지키는 힘이자 미래를 믿을 수 있는 희망의 증거임을 믿을 수 있길 바란다. 이것이 코로나19라는 상처 앞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다.

/이기영 경기도공공기관 노동조합총연맹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