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중심지 수원에
1907년 창업한 종묘사 잡지
서울 소공로 지점… 종자·묘목취급
철도·우편을 통해 영업
'고서의 역사적기억' 사료 가치


전문가 조성면2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보통의 날들"이라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문장이다. 나이가 드니 백 가지 좋은 일보다 한 가지 나쁜 일이 없는 것이 더 좋고 좋은 일이 생기는 것보다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편이 백 번 천 번 낫다.

코로나19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삶과 일상이 정지되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려움이 크다. 불평불만이 많았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또 인류가 한 가족으로 살아야 하는 지구촌 시대에는 나만, 우리나라만 괜찮으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절감한다. 이럴 때 고서 타령이 조금 한가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답답한 일상에 작은 위로와 잠깐의 기분전환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개인 소장 자료를 이용한 소규모 전시 준비를 하느라 서가를 뒤지다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작은 팸플릿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조선농림원예요람'이라는 '부국원 월보(富國園月報)' 제35권 6호인데 발행일자는 1942년 6월 10일이다.

부국원(富國園)은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동명의 종묘회사 건물로 2017년 국가등록문화재 제698호로 지정되었으며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에 위치해 있다. 이 근대건축물은 식민지 수탈정책과 긴밀히 연결돼 있는 슬픈 역사적 기억물, 이른바 그리프 투어리즘(Grief Tourism)의 대상이겠으나 역사적 교훈을 되새길 수 있는 장소로서 유의미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부침과 역사적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기념물로서 그 가치도 크다.

부국원의 존재는 1923년에 출판된 사카이 마사노스케의 '수원'이라는 책을 통해서도 확인되니 최소 백년의 역사를 지닌 건축물이다. 해방 후 1950년대에는 수원법원과 검찰 임시청사로 활용됐고 나중에는 수원시 교육지원청, 공화당 청사, 수원예총 사무실로도 사용됐다.

종자·종묘·비료 등 농업과 관련된 주식회사 부국원이 수원에 들어선 것은 수원의 역사와 긴밀히 호응한다.

수원은 개혁의 상징도시, 요컨대 조선후기 국가의 역량과 정조의 정치 철학이 집중된 신도시요, 농업의 중심지였다. 미국이 농업 국가이듯(미국은 첨단 군수산업과 금융 중심의 국가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거대 농업국가이다) 수원도 농업의 중심도시였다. 정조 시대에 조성된 관개시설로 축만제와 만석거가 있으며 대유평과 서둔이란 이름이 이를 뒷받침한다. 통감부 시대인 1906년 권업모범장이 들어섰고 1962년 농촌진흥청이 설립됐으니 수원은 가히 한국 농업의 메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농촌진흥청이 완주로 이전하면서 그 의미가 많이 약화하였지만 수도권의 균형발전과 지역 정체성 유지를 위해 그 역사성을 잘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

'부국원 월보'를 살펴보니 창업연대가 35년 전 그러니까 1907년인 것으로 소개돼 있다. 이로 미루어 부국원이 권업시험장의 설립과 함께 그 역사가 시작된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정해 볼 수 있다. 본사는 경기도 수원읍 궁정 93번지 지금의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 130번지에 있었으며 지점은 경성부 명치정 22정목으로 현재 서울시 중구 소공로에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각종의 종자와 묘목 등을 취급했으며 철도와 우편을 통한 영업을 전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서는 역사적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며 소장자의 안목과 태도에 따라 쓰임새와 팔자가 달라질 수 있다. 탐구심과 진정성이 없으면 고가의 고서도 그냥 낡은 책이요, 반대로 아무리 허접한 작은 책자라도 쓰임에 따라 귀중한 역사적 자원이 될 수 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