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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적이고, 기사다운 시합은 인간의 최고의 자질을 깨웁니다. 그것은 또한 평화의 정신 안에서 국가들을 결속시키는 것을 돕습니다. 그것이 올림픽 성화가 죽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아돌프 히틀러의 개최 연설 중 한 대목이다. 겉으로는 스포츠를 통한 국제평화를 강조했지만, 나치정권을 수립한 히틀러는 독일 선전을 위해 최초의 성화봉송, 최초의 TV생방송 등 베를린올림픽을 철저하게 기획했다. 하지만 올림픽을 통한 국제평화는 기만이었다. 히틀러는 1939년 폴란드 침공으로 2차 세계대전의 지옥문을 열었다.

1896년 아테네올림픽이 개최된 이래 4년 주기로 열리는 올림픽이 취소된 건 1, 2차 세계대전 시기뿐이다. 1차 세계대전으로 1916년 독일 베를린올림픽이 취소됐는데,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나치의 세계대전 예고편이 됐다. 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인 1940년 일본 도쿄올림픽은 중일전쟁 개전으로 핀란드 헬싱키로 개최지를 옮겼지만 끝내 취소됐다. 1944년 영국 런던올림픽은 아예 개최를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세계대전 종전 이후 올림픽은 단 한차례 중단 없이 이어졌다. 오히려 개최국, 개최도시의 영광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졌다. 올림픽 개최가 선진국 통과의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냉전시대에는 동·서 진영의 체제 경쟁으로 인한 정치적 오염이 심각했고, 냉전시대 이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상업성과 개최국의 올림픽 불황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지만, 올림픽 개최는 여전히 나라와 민족의 자부심을 상징한다.

일본 아베정권이 공들여 준비해 온 제32회 도쿄올림픽 개최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의 세계대전이 한창인 가운데, 올림픽 개최에 대한 부정적인 지구촌 여론 때문이다. 캐나다가 올림픽 불참을 선언했고, IOC도 개최 연기 검토에 들어갔다. 아베 총리도 마지못해 연기 가능성을 언급했다. 아베 정권은 도쿄올림픽을 통해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폭발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려, 2013년 개최권을 따낸 이후 수십조원을 쏟아부었다. 일부 종목의 후쿠시마 개최와 후쿠시마 식자재 사용 등 방사능 올림픽 비판에도 아랑곳 않던 아베 총리도 코로나 팬데믹 앞에서는 무력하다. 세계대전만큼이나 무서운 코로나 팬데믹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