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총선을 앞두고 막장의 진수를 보여주는 비례대표의 전신은 '전국구(全國區)'다. 1963년 6대 총선에서 첫선을 보인 전국구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직능대표성을 선출한다는 취지로 탄생했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여당은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정치인과 직능별 지지세력 확보를 위해 전국구를 이용했고, 늘 정치자금이 부족했던 야당은 정치자금 모금창구로 전락시켰다.
유신헌법하에 있었던 9, 10대 국회에서 전국구는 유신정우회(유정회)로 바뀐다. 대통령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출한 유정회 의원은 여당의 입장을 관철하는 거수기 역할로 '원내전위대', '친위대'란 소리를 들어야 했다. 11대 국회 때 부활한 전국구는 16대 국회까지 지역구 의석이나 득표율에 따라 의원을 뽑을 때 당선 가능한 앞번호를 받기 위해서 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30억원 내면 당선되고 20억원 내면 떨어진다는 '30당·20락'이란 말도 그때 나왔다. 특권은 누리면서 지역구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천국구(天國區)'라고도 불렸다.
17대 총선부터 1인 2표제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돈 공천 논란은 줄었지만, 특정 계파 공천 논란은 오히려 더 커졌다. 여전히 비례대표 본연의 의미 대신 당 대표나 실력자의 측근들이 포진하는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번 4·15 총선 비례대표의 확보를 놓고 집권당이 급조한 정당과 손을 잡으며 추악한 전쟁을 벌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신생 정당의 난립도 문제다. 이는 작년 말 민주당이 제1야당의 반대에도 '4+1 협의체'를 앞세워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 가능성을 높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을 강행 처리해 가능해졌다. 20대 국회가 만든 최악의 부산물이다. 양당제 폐해를 줄이고 군소정당의 당선자를 늘리겠다고 선거법을 개정했지만 이제 두 거대 정당의 의석수가 더 늘어나는 꼴이 됐다. 이 때문에 4·15 총선 투표장에서 유권자들은 생전 처음 보는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망연자실할지도 모른다. 성인 양팔 길이의 투표용지와 당명을 읽는 데만 족히 1분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몸이 불편하거나 눈이 어두운 어르신의 경우 기표가 가능할지 장담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20일 후면 아프리카 신생국의 투표장을 재현한, 황당한 상황이 실제 우리 눈앞에 펼쳐지게 될 것이다. 비례대표를 폐지하라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