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 13일 치러진 16대 총선은 재적 의원 273명 중 야당인 한나라당이 과반에 4석 모자라는 133석을, 여당인 민주당이 115석, 자민련이 17석을 얻어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됐다. 이에 가장 당황한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으로 훗날 이때를 회상하며 '정국안정을 희구했지만 나는 늘 뒤뚱거리는 선박의 선장'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예상대로 여소야대로 인한 불안정한 정치지형은 첫해에만 4번의 파행을 부르는 등 국회는 극심한 정쟁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때문에 16대 국회는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기 위한 '자민련 구하기'가 노골적으로 시도됐다. 그중 하나가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 마침내 2000년 7월 민주당은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교섭단체 요건을 원내 의석 20석 이상에서 10석 이상으로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지만, 이만섭 국회의장이 거부해 본회의까지 가지 못했다.
그러자 민주당 배기선 의원이 총대를 멨다. 의원 3명이 자민련으로 옮기면 원내교섭단체가 되는 것에 착안, 송석찬 의원과 송영진 의원과 전격 이적한 것이다. 국회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의원 꿔주기'다. 그때만 해도 이 추태가 헌정사상 유례없는 코미디로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되리란 걸 아무도 몰랐다. 이뿐이 아니다. 송석찬 의원이 김 대통령에게 "저는 한 마리 연어가 되어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라는 충성편지를 보낸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배기선 의원은 훗날 인터뷰에서 "이튿날 새벽 김대중 대통령이 전화로 '배 동지가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줄은 몰랐소'라며 감사를 표했다"고 말했다.
국회 창고 속에 처박혀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줄 알았던 '의원 꿔주기' 망령이 4·15 총선을 앞두고 정치판을 배회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 투표용지 상 앞 순번을 받기 위해서 비례 위성 정당인 더불어시민당으로 현역 의원 7명을 보내기로 하면서 '의원 꿔주기'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국회 사상 처음으로 소속 의원 3명을 만장일치로 제명하는 거친 수법이 사용됐다. 4명은 탈당계를 내고 당적을 옮긴다. 미래통합당이 같은 방법으로 의원을 내보낼 때 불법이라며 황교안 대표 등을 고발한 민주당이다. 후안무치(厚顔無恥). 한국 정치의 민낯이다. 이 정도면 3류 측에도 못 끼는 4류 정치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