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하는 환자 伊·美 대응 지침보며
선진국 의료시스템 붕괴 다시 생각
사람생명 돈으로 환산 뼈아픈 현실
영리보다 공공 의료 중요성 일깨워
감염병들이 인간에 전하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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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젊은이인가. 고령자인가. 이탈리아의 의사들이 폭발적인 코로나19 환자를 놓고, 윤리적 선택에 고통스러워했다. 의료진들에겐 생존 가능성이 큰 환자를 위해 의료자원을 비축하라는 지침도 내려진 바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국방물자생산법을 동원했다. 자동차보다도 마스크와 인공호흡기가 급한 현실. 선진국가의 의료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과연 어떤 문제가 있었던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코로나19처럼 긴급하고 세계적 상황을 예측한 것은 아니지만 의료와 관련하여 선호공리주의를 주장한 학자가 있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 피터 싱어(P.Singer)이다. '중증의 신생장애아는 살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일종의 선호적 공리주의를 주장했다. 1989년 6월 장애인 단체를 비롯한 독일 언론들의 격렬한 항의가 있었고, 결국 그의 심포지엄과 강연은 중단되었다. 그를 강연에 초청한 교수에 대해 해임 운동까지 일어났다. 그의 주장은 연명치료의 중단과 존엄사의 문제로까지 연계된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무엇이며,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하지만 돈이 들거나 생산성이 없는 인간 등에 대한 치료 포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비판을 받았다. 약자는 낳지도 살리지도 않는다는 나치의 논리라고 비난되었다. 7만명 이상의 장애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나치의 '안락사' 계획을 상기시키는 극도의 분노를 독일인들에게 일으켰다. 생명의 신성성(Sanctity of Life)을 주장하는 종교의 입장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의료자원의 합리적 이용이라는 선호공리주의에도 불구하고, 생명조작의 추진이나 생명의 탈신성화를 추구하는 일종의 우생이데올로기로서 비판되었던 이유다.

그런데도 세계적으로 긴급한 의료 현실이 의료진이나 의료 자원의 분배적 정의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지친 의료현장과 의료진들의 한계 그리고 의료시스템 붕괴의 가능성을 들어 외국인의 입국금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차별하고 싶지는 않다는 의료진의 절규나 생명의 존엄에도 불구하고 삶과 죽음의 대상을 선별해야 하는 현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의료자원의 합리적 이용이라는 현실이 싱어가 주장했던 토대와 전혀 다른 상황에서 약자에 대한 포기와 일부환자에 대한 우선권이 정당화되고 있다. 이미 코로나19는 글로벌과 포용정신을 내팽개치고, 자국과 자국민 우선이라는 극단의 이기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를 피해 요트를 타고 안전한 곳을 찾아 나선 세계적 갑부들도 있다. 벙커로 피신하는 미국인들도 있다. 그러나 70대의 사제는 산소 호흡기를 젊은이에게 양보하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부모가 자식이 감염될까봐 집밖에서 죽음을 선택했다는 외신도 있었다. 특정 종교집단 때문에 치료를 기다리다 숨진 국민들도 있다. 일부의 이기주의적 행태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빛나는 것은 질병에 맞서는 존경스러운 의료진, 평등한 의보체계 그리고 묵묵히 자신에 충실하면서 버텨내는 시민들의 덕분이다.

그런데도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생명의 질을 내세워 생명과학이 왜곡시킨 것은 아닌지. 그동안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자본과 결탁하면서 공동체와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잃게 한 것은 아닌지. 투기자본과 의료정책이 공공의료의 구축보다는 의료관광과 장기이식이라는 영리적 목적과 결합한 결과는 아닌지. 줄기세포와 유전자 연구가 영생을 꿈꾸는 자본의 탐욕과 일부 인간들을 위한 욕망의 수단이 된 것은 아닌지. 고령화 사회가 가져온 요양원 정책에는 도대체 어떤 문제가 복합적으로 내재되어 있는지. 영리병원이나 외국병원의 유치를 업적으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공공의료원은 수익성이 없다면서 폐쇄하거나 축소시킨 결과는 아닌지.

코로나19는 인간의 존엄과 생명조차도 돈으로만 환산해온 현실에 대한 뼈아픈 경고가 담겨있다. 인간의 생명과 공동체가 없다면 돈도 경제도 없다. 영리적 의료보다는 공공의료 체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주고 있다. 의료와 생명에 대한 자본의 탐욕을 멈추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에 대한 신성성을 다시 생각할 때다. 그것이 반복되는 감염병들이 인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