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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퍼펙트 스톰'이 온다 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낙관론이 우세할 때, 일엽편주(一葉片舟)에 올라타서 "곧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몰아치니 어서 이 배를 타시오!"라고 소리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2006년 9월 홀연히 나타나 "미국 경제가 머지않아 주택시장 붕괴와 금융회사 파탄으로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무시무시한 비관론을 설파한 학자가 있었다.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미국 내 대표적인 증시 비관론자, 누리엘 루비니. 우리에겐 '닥터 둠'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당시엔 낙관론이 넘쳐나던 때라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신출내기 학자의 도발적 발언에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2년 뒤인 2008년 9월 그의 말대로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는 등 전 세계를 공포 속에 몰아넣은 금융위기가 들이닥치면서 그는 일약 스타가 됐다. '위기의 예언자'라는 별명도 그때 얻었다. 2009년 '타임'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후 각종 포럼과 세미나에서 인기 있는 초청 대상이 돼 돈방석에 앉았다.

닥터 둠, 그가 돌아왔다. 루비니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경기 침체가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지금 상황은 대공황때보다 훨씬 더 나쁘다. V자나 U자형 회복은 기대하지도 마라. I자형 경제의 급전직하가 닥치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장을 날렸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위기는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 세계 경제가 큰 상처를 입으면 단번에 V자 회복은 없으며 몇 년간은 낮은 성장세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는 눈사태와 같아 이를 극복만 하면 원상태로 돌아올 것"이라는 말처럼 V자형 회복이 가능하다는 낙관론도 만만치 않다. 분명한 건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가 공포에 휩싸인 지금, 루비니의 발언이 극단적 비관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닥터 둠의 주장이 언제나 맞아 떨어진 것은 아니다. "매번 경기침체를 경고하다가, 몇 년에 한 번씩 운 좋게 얻어걸린다"며 루비니의 비관적 전망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