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 히트곡이 쏟아진, 1994년 발매한 김광석의 4집 앨범은 명반으로 꼽힌다. 이들 노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지만, 앨범에 실린 곡 중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독 아끼는 곡이 있으니 다름 아닌 '회귀'다. 처연한 모습으로 피어난 목련을 통해 허무한 인간의 삶을 성찰한 곡이다. 김지하의 시에 황난주가 곡을 붙였다.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흙으로 가네/ 검은 등걸 속/ 애틋한 그리움 움트던 겨울날 그리움만 남기고/ 저 꽃들은 가네.'
목련에 관한 노래는 셀 수 없이 많다. 양희은의 '하얀 목련'도 그중 하나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 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 사랑이어라// 거리엔 다정한 연인들 혼자서 걷는 외로운 나/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잊을 수 있을까/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30대 초반 암 판정을 받은 양희은은 친구가 보낸 편지를 읽고, 때마침 창밖에 핀 목련을 보며 노래 가사를 적어 내려갔다. 여기에 김희갑이 곡을 붙였다. 봄날의 찬연한 슬픔과 삶의 쓸쓸함이 담겨있는 두말이 필요없는 '불후의 명곡'이 되었다.
목련(木蓮)은 말 그대로 '나무에 핀 연꽃'이다. 순백의 탐스러운 자태는 우아하고 귀족적이다. 아름답지 않은 봄꽃이 어디 있으랴마는 목련의 고고한 기품은 봄의 여왕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고귀함, 숭고한 정신, 우애 등 목련을 따라다니는 꽃말도 많다. 목련은 꽃송이가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피어 예로부터 북향화(北向花)라고 불리며 충절을 상징했다. 그래서인지 목련엔 왠지 처량한 구석이 있다. 절정을 지나 꽃잎을 떨구기 직전의 목련이 가장 슬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정신을 놓은 사이 봄이 벼락처럼 찾아왔다. 주위를 돌아보니 천지가 온통 목련 투성이다. 군무를 추듯 무리를 이룬 벚꽃 때문인지 홀로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목련이 외로워 보인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라는 '4월의 노래'가 떠오르지만, 코로나19는 그런 낭만도 모두 빼앗아가 버렸다. 하얀 마스크를 쓴 한 무리의 학생들이 하얀 목련 아래를 지나가고 있다.
/이영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