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방송 후원품 개봉장면
시가보다 배송비큰 비누등장에 떨려
암보험 해지해 기부한 지체장애인
우리는 '무언가' 넘어서고 있는 것

방송 중에 코로나19 환자를 천안으로 이송하는 소방대원들이 출발 전에 기저귀를 챙기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취재기자가 환자용이냐고 묻자 그중 한 대원이 해맑은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저희들이 사용하는 겁니다. 감염의 우려가 있어 중간에 주유소를 들러도 보호복을 벗을 수 없기 때문에 기저귀를 차는 겁니다."
이어서 간호사들이 잠시 마스크를 벗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카메라에 비쳤다. 콧등에는 다들 밴드를 붙이고 입가에는 마스크 자국이 완연했는데 이마에는 저마다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그들의 주름은 근심의 흔적이 아니라 방호복을 착용한 흔적이다.
방송에 따르면 방호복을 입고 움직이면 전신이 금세 땀으로 흠뻑 젖고 고글까지 착용하면 습기가 차서 앞도 잘 보이지 않는데 그렇게 24시간을 3교대로 근무하며 환자를 보살피다보니 코피를 쏟거나 탈진해 쓰러지는 간호사들이 하루에 한 명 꼴로 나온다고 한다.
밤샘근무를 마치고 나오는 한 자원봉사자에게 기자가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거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애초 기약 없이 왔습니다."
갓 스물이 된 그 청년은 앞으로 소방대원이 되어 인명을 구조하는 일에 함께 하는 것이 꿈이라고 이야기했다.
대구에 답지한 후원물품을 개봉하는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자원봉사자들의 분주한 손놀림을 따라가다가 작은 종이봉투를 비추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달랑 비누 두 장이 들어 있었다. 봉투를 연 사람의 손이 잠시 떨렸고 화면을 보고 있던 내 마음도 따라서 떨렸다.
아마 저 비누 두 장의 시가(市價)는 배송 비용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보내는 비용이 더 들었을 테니 시장 원리에 따르면 비누를 보낸 것은 보내지 않은 것만 못한 일이 된다. 시장의 정의는 상호이익인데 보낸 사람과 받은 사람 모두의 이익에 마이너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 비누 두 장이 필요한 사람에게 배달된 것은 시장의 논리를 넘어서는 다른 무언가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게 뭔지 지금까지 생각중이지만 분명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3월 2일에는 서울의 한 주민센터에 어느 시민이 찾아와 봉투를 건네며 "대구 코로나19 피해 주민을 위해 써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봉투를 열어보니 현금 118만7천360원과 함께 편지가 들어 있었고 편지에는 "나는 기초수급자로 그동안 나라에서 생계비를 지원받아 생활했다. 대구 코로나19 피해 소식에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 준비했다"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다리가 불편해 지체장애 5급 판정을 받은 시민으로 7년간 유지하던 암보험을 해지하고 그 돈을 주민센터 직원에게 건넨 것이라고 한다.
이보다 하루 앞선 3월 1일에는 광주공동체 특별담화문이 발표되었다. 대구 경북지역에 병상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광주가 대구 경북지역의 환자를 받아들여 치료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후 광주에서 치료를 받았던 환자는 전원 완치되어 대구로 돌아갔다.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험지로 달려가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본 의료진과 소방대원들, 생업을 제쳐두고 이웃을 위해 궂은 일을 맡아준 자원봉사자들, 비누 두 장을 기부한 이름 모를 시민의 아름다운 마음, 보험을 해지한 기초생활수급자의 성금 118만원,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이웃을 받아들여 정성껏 치료해 건강을 되찾아준 광주공동체의 아름다운 배려. 이들이야말로 지난 몇 주 간 한국 사회를 지탱해온 영웅들이다. 특히 비누 두 장과 118만원의 기부는 도움을 받아야 할 이들이 보내는 도움의 손길일지 모른다. 희망은 늘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굳이 서둘러 나의 울타리를 치고 남의 마스크까지 빼앗아가며 허둥대는 이기적인 사례와 비교하지 않아도, 인간과 공동체의 품위는 어디에서 바닥을 드러내는지 보인다. 희망이 보이는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언가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