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 '쿠오바디스'에 가려져 그렇지 헨리 코스터 감독의 1953년 작 '성의(聖衣)'는 이들 못지 않은 명작으로 꼽힌다. 리처드 버튼, 빅터 마츄어, 진 시몬즈 등 배역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는 와이드스크린 방식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시네마스코프였다. 이 덕분에 '드미트리우스와 검투사들'이란 속편이 제작될 정도로 20세기폭스는 돈방석에 앉았다.
줄거리는 이렇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맡았던 마르셀루스(리처드 버튼). 밤마다 예수가 처형 때 입었던 옷이 나타나는 악몽에 시달린다. 우여곡절 끝에 노예로 살다 자유의 몸이 된 드미트리우스(빅터 마츄어)를 만나 옷을 찾는다. 마르셀루스는 옷에 손을 대는 순간,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느끼며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예수를 따르게 된다.
예수가 마지막에 입었던 옷은 예수의 시신을 덮은 수의(壽衣)와 함께 기독교도에겐 가장 귀한 성물(聖物)로 꼽힌다. 수의가 우리 앞에 나타난 건 1898년 이를 촬영하기 위해 토리노 대성당을 찾은 사진작가 세콘도 피아에 의해서다. 그가 수의를 촬영하고 현상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감광판에 남자의 앞모습과 뒷모습이 희미한 갈색 형상으로 나타났다. 그 형상이 성경에 묘사된 예수의 모습과 일치했다. 그때부터 토리노는 '통일 이탈리아'의 첫 번째 수도라는 명성 대신 '토리노의 수의'로 더 유명해졌다.
그러나 수의의 진위를 두고 논란도 끊이질 않았다. 탄소동위원소로 측정한 결과, 제작 시기가 1260년에서 1390년 사이이며 수의에 남겨진 핏자국 절반이 가짜라는 주장도 나왔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수의에 찍힌 인간형상의 오른쪽 눈에 동전이 있었던 흔적이 있는데, 이는 유대인들의 관습이며 동전 역시 빌라도가 기원후 29년 발행한 '렙톤' 동전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수의는 1354년 발견된 이후 중요한 계기가 있을 때만 일반에 모습을 드러냈다. 근대에 들어 1933년 처음 모습을 보인 이래, 2015년까지 여섯 차례 공개됐다. 코로나19로 실의에 빠진 인류와 사태 극복을 기원하기 위해 토리노 수의가 한국시각 12일 0시 온라인으로 공개된다는 소식이다. 이날은 예수가 처형돼 부활하기 전 무덤 속에 있었다는 날로, 가톨릭에선 '성 토요일'이라 부른다.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가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수의 공개로 이 고난을 극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이영재 주필